“어머니는 흑인이고 여성이었다. 나는 거기에 장애까지 갖고 태어났다.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였던 내가 스페셜올림픽을 만난 건 축복이다.”
미셸 콴(32)과 함께 스페셜올림픽위원회(SOI) 이사 자격으로 한국에 온 로레타 클레이본(59·사진)은 세계 지적장애인들의 우상이다. 보스턴 마라톤에서 ‘여성 톱100’에 2차례 포함되는 등 풀코스만 26차례 완주했다. 최고 기록이 3시간3분대로 웬만한 비장애인보다 낫다. 가라테 유단자이기도 한 그는 피겨스케이팅, 축구, 스키, 골프, 농구, 수영, 볼링 선수로도 활약했다. 지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SOI 임원이 됐고, 미국의 대학 2곳에서 명예박사학위까지 받았다. 21일 그를 만났다.
“가난한 가정의 7남매 중 넷째였는데, 선천적으로 시각장애가 있었다. 지적장애 탓에 4세 때까지 말하지도 걷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눈과 다리를 수술시켜 주셨다.”
1950년대 미국에서 장애를 가진 흑인 여자아이는 저주받은 존재였다. 학교에서도 지하에 격리된 채 수업을 들어야 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만만한 놀림감이었다.
“말을 잘 못했던 나로서는 주먹이 유일한 무기였지만 여럿을 상대할 순 없었다. 울면서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나를 혼냈다.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였다. 부족한 어휘력 때문에 말을 짧게 하면 늘 ‘완전한 문장’이 나올 때까지 대답하도록 시켰다. 그 덕분에 지금처럼 불편 없이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는 12세 때 오빠와 함께 뛰기 시작하면서 달리기의 매력에 빠졌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한 것이다. “뛰는 게 즐거웠지만 취미에 불과했다. 그러다 우연히 1970년 스페셜올림픽에 출전하면서 내 인생이 바뀌었다. 하느님이 로마 군대를 보내주신 것 같았다. 이 대회가 없었다면 나는 직업도 가질 수 없었고 세금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여러 장애를 안고 있지만 노력과 의지로 극복하며 살고 있다.
이번이 2번째 방한이다. 2년 전에는 개최지 선정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강원도를 방문했다.
“이번에 경기장 시설을 둘러보고 정말 놀랐다. 선수들은 입국에서 출국까지 최고의 경험을 할 것이다. 내년 평창 겨울스페셜올림픽이 한국 사회가 지적장애인을 포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 우리는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가진 재능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그 점을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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