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 포인트]규정에 발목잡힌 김연경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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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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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지난달 중순 중국에서 열린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2차 예선을 취재하면서 김연경(24·사진)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 언제 돌아올 거냐는 질문에 그는 “당장은 돌아가고 싶지 않다. 돈 때문은 아니다. 지금 돌아가면 퇴보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나를 보고 어린 선수들이 꿈을 가진다면 한국 배구를 위해 좋은 일 아닌가. 구단에서 몇 년 더 허락해 준다면 나중에 돌아와 흥국생명에 뼈를 묻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흥국생명이 그때까지 기다려주겠느냐고 묻자 그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우려했던 일은 결국 수면 위로 떠올랐다.

흥국생명은 2일 한국배구연맹(KOVO)에 김연경의 임의탈퇴를 요청했다. 별도의 후속 조치가 없다면 김연경은 국내 다른 팀과 계약할 수 없다. 대한배구협회가 이적동의서를 발급하지 않으면 해외에서도 뛸 수 없다. 자칫하면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가 공중에 붕 뜬 신세가 된다.

프로배구 규정상 김연경은 엄연히 흥국생명 소속이다. 자유계약선수(FA)가 되려면 6시즌을 소화해야 하는데 김연경은 4시즌만 뛰었다. 김연경이 개인적으로 고용한 에이전트가 불법이라는 흥국생명의 주장도 타당해 보인다. 반면 김연경의 에이전트는 규정을 떠나 직업 선택의 자유를 내세운다. 또 지난달 30일로 흥국생명과 계약이 끝나고 재계약을 안했기에 해외 이적에 있어서는 FA나 마찬가지라고 맞서고 있다.

양쪽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가장 상처받는 쪽은 선수다. 게다가 런던 올림픽이 코앞이다. 8년 만에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한국 여자배구는 36년 만에 메달을 노린다. 이 모든 게 김연경이 있기에 가능한 얘기다.

흥국생명이 김연경과 함께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가 오면 당장 우승 전력이다. 그런 선수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 안타까움도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타협 없이 규정만 앞세운다면 김연경의 마음은 영영 흥국생명을 떠날 수 있다. 김연경은 이미 더 큰 세계로 나아갔다. 선수에 대한 권리를 따지는 것도 좋지만 한국 여자배구의 위상과 미래도 고려해 줄 수는 없을까. 물론 김연경이 언젠가는 흥국생명으로 돌아온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김연경#여자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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