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하루 24시간 꼭 붙어 배구에 웃고 배구에 우는 우린 닭살부부다

국내 유일 감독 남편-코치 아내… 안산 원곡中 배구부 이끄는 김동열-홍성령 씨

《 #1.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게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보는 것이다.(생텍쥐페리)

“이 사람, 보는 순간 너무 예뻤어요. 애인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죠.”(김동열 감독·52)

“이 남자, 젊었을 때 잘생겨 인기가 많았죠. 지금은 좀… 아닌가?”(홍성령 코치·49)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난 건 1983년 10월 인천 전국체육대회에서였다. 전북대 4학년이던 남자는 선수로 대회에 출전했고 실업팀 한일합섬 소속이던 세 살 아래의 여자는 전북OB팀 매니저로 참가했다. 》
여고 시절 남자로부터 ‘배구 과외’를 받은 여자의 동료들이 다리를 놨다. 둘은 마주 보며 서로 만족해했다. 이후 바빠서 자주는 못 만나도 연인 관계를 이어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실업팀 한전에 잠시 몸을 담았던 남자는 군 복무를 마친 뒤 1986년 태광산업 코치로 취직했다. 태광산업 감독은 젊은 남자가 여자팀 코치로 일하는 게 신경이 쓰인 듯했다. 남자에게 대뜸 결혼 상대가 있느냐고 물었다. 얼떨결에 “있다”고 한 남자는 다짜고짜 여자를 압박했다. 상황이 이러니 결혼을 빨리 해야겠다고. 여자도 엉겁결에 승낙했다. 그해 11월 결혼할 당시 남자 나이 스물여섯, 여자는 스물셋. 그때는 둘 다 몰랐다. 나이 쉰이 돼서도 하루 스물네 시간 함께 같은 곳을 보게 되리라는 것을.

#2. 그 얼마나 많은 부부가 결혼으로 인해 서로 멀어지게 되었던가.(앨프리드 카퓨)

“수지 엄마, 내 얼굴 봐서라도 좀 도와주라.”

“배구를 그만둔 게 언젠데. 자신 없어요.”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한 남편은 1988년 9월부터 교편을 잡았다. 1993년 발령을 받은 곳이 안산 원곡중학교였다. 부임과 함께 남편은 여자 배구부 창단 감독을 맡았다. 남편은 교사와 감독 일을 함께 하느라 바빴지만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됐던 아내는 ‘가장은 다 그러려니’ 했다.

아내 인생의 전환점은 예기치 않게 왔다. 원곡중 옆 초등학교 여자팀 감독으로 있던 남편의 친구 때문이었다. 다른 학교로 발령을 받은 그는 자신이 없는 동안 팀을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사양하며 다른 코치를 구해 보라 했지만 쉽지 않았다. 50만 원도 안 되는 수당을 받으며 일할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남편 친구의 부탁에, 남편의 설득에 결국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구공을 놓은 지 7년 만에 ‘초등학교 지도자’로 복귀했다.

1995년 마침 ‘순회 코치’라는 게 생겼다. 시교육청에서 보조금을 지원해 젊은 코치들을 활용하는 제도였다. 문득 남편의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른 코치를 그 초등학교로 보내고 아내를 원곡중 코치로 끌어들였다.

“만류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집에서 보는 것도 모자라 밖에서도 보냐고. 잠깐 고민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이 사람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김 감독)

창단 이듬해까지 실적이 없었던 원곡중은 1995년 ‘감독 남편-코치 아내’ 체제를 갖춘 뒤 달라졌다. 그해 무등기 대회에서 2위에 오르며 첫 입상에 성공했고 1996년 전국소년체육대회 3위, 무등기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창단 초기에는 초등학교 학부모님들이 우리 학교를 못 믿었어요. 좋은 선수들이 올 리 없었죠. 제가 온 뒤 인식이 바뀌었어요. 부부가 감독과 코치를 하니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홍 코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 평균 840쌍이 결혼하고 그 절반에 가까운 398쌍이 이혼했다. 한 해 약 15만 쌍이 결혼으로 더 멀어진 셈이다. 그들이 결별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대화의 단절이었다. 김 감독-홍 코치 부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유다.

#3. 남자가 가지고 있는 최고 또는 최악의 재산은 바로 그의 아내다.(토머스 풀러)

18년째 안산 원곡중 여자 배구부에서 ‘감독 남편-코치 아내’로 함께하고 있는 김동열(앞줄 오른쪽)-홍성령 부부. 사진기자의 요청에 따라 부부가 포즈를 취하자 지켜보던 14명의 선수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배구공 하트’를 만들어 줬다. 선수들은 “훈련할 때는 무섭게 시키신다”면서도 촬영이 끝나자 배구공을 부부에게 던지며 즐거워했다. 안산=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창단 초기, 환경은 열악했다. 당시만 해도 선수들은 대회를 앞두고 학교에서 먹고 자며 훈련을 했다. 1999년 전국대회 4관왕을 차지한 뒤 학교에서 숙소를 지어 줬지만 그 전까지는 체육관 탈의실에 보일러 온돌을 깔아 학생들을 재웠다. 잘 곳이 부족해 탈의실에 김 감독이 직접 다락방도 만들었다. 부부도 아이들과 함께 잤다. 체육관 보조 현관 바닥 위에 마루를 깔고 잠을 청했다.

“불편함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어요. 빨리 기반을 잡고 성적을 올려야 했으니까요. 부부라 믿었다지만 부부라 괜한 말도 나올 수 있잖아요. 큰딸 수지(25)와 작은딸 재영이(24)가 초등학교 입학 전후였는데 배구부에 매달리다 보니 애들을 방치하다시피 했어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미안하죠.”(홍 코치)

“혼자일 때보다 훨씬 편해졌어요. 공을 때려주는 것부터 밥해 주는 것까지 이 사람이 다 했으니까요. 얼마 안 되는 코치 월급 털어 애들 부식비로 쓸 때도 많았죠. 그러면서도 저한테는 불평 한 번 안 했어요.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김 감독)

부부는 ‘감독 남편-코치 아내’가 배구에서는 자신들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후 몇 커플이 나왔지만 지금은 유일한 ‘감독 남편-코치 아내’라고 했다. 부부에게는 이런 자랑거리가 하나 더 있다. 가족 전부가 같은 코트에 있어 봤다는 것이다. ‘방치하다시피’ 키운 수지와 재영은 부모를 닮아 키가 컸다. 운동 신경도 좋았다. 배구 선수로 제격이었다. 재영은 프로팀에 입단한 뒤 진로를 바꿨지만 큰딸 수지는 프로배구 현대건설의 주전 센터로 활약하고 있다.

“수지가 우리 학교에 온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말렸죠. 자기 자식 못 가르치는 법이라며. 이 사람이 한번 해보자고 하기에 따랐지만 마음고생도 꽤 했죠. 저희 애들은 잘못 안 했어도 다른 아이들 혼낼 때 더 혼냈어요. 역차별을 받은 셈이죠.”(홍 코치)

“온 가족이 한 코트에서 감독-코치-선수로 뛴 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걸요. 어쨌든 저희 가족 이후에 자식 가르치는 지도자들이 늘어난 건 사실이에요.”(김 감독)

큰딸 수지가 2학년이던 2001년 원곡중은 4차례 전국대회에서 우승 2회, 준우승 2회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수지와 같은 학년에는 김연경이, 3학년에는 황연주(현대건설)가 있었다. 지금은 둘 다 한국 여자배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공격수다.

“연경이는 그때 키가 너무 작았어요. 세터와 리베로를 시키면서 기본기를 익히게 했죠. 연주는 키가 컸는데 배구를 중학교에 온 뒤 시작해 신경을 많이 써야 했어요. 둘이 고교 때부터 일취월장하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김 감독)

이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 김연경은 중학교 시절을 이렇게 기억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는데 5년 동안 키가 안 자라 힘들었다. 중학생 때 두 선생님이 ‘너는 손발이 크고 골격이 좋아 곧 키가 클 것’이라며 용기를 주고 열심히 가르쳐 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배구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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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혼은 서로의 곤경을 같이 치러주는 것이다.(프리드리히 니체)

18년째 ‘감독 남편-코치 아내’로 살고 있다지만 공백도 있었다. 김 감독이 2007년 한 고교로 전근을 가면서였다. 남편이 떠난 뒤 선수들을 돌보던 아내도 몇 개월 뒤 코치를 그만뒀다.

“1년 반 정도 떠나 있는 동안 다른 세상을 만났어요. 배구부가 없는 고교라 체육교사 역할이 전부였죠. 저녁 시간에 그동안 못 했던 일들 실컷 했어요.”(김 감독)

김 감독은 고교에서 임기를 마치면 인근 중학교 남자 배구팀을 맡을 계획이었다. 홍 코치가 남학생들을 지도하는 건 힘에 부쳐 자연스럽게 아내를 쉬게 해 주고도 싶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부부가 떠난 뒤 원곡중 배구부가 내리막길을 걸은 게 문제였다. 2008년 9월 학부모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다시 감독을 맡지 않으면 아이들을 전학시키겠다며 엄포를 놨다.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고민했죠. 내가 만든 배구부가 해체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꿨어요. 주위에 양해를 구하고 이듬해 3월에 돌아왔죠.”(김 감독)

임기를 채워야 했던 김 감독은 아내에게 먼저 복귀를 요청했다. 홍 코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쉬다 보니 너무 편하고 좋은 거예요. 십몇 년을 해왔는데 또 그 고생을 하고 싶겠어요. 이 사람이 일주일동안 간쓸개 다 빼줄 듯 잘해 주면서 설득하데요. 결정을 못 하다 큰딸에게 물었죠. 엄마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느냐고. 수지는 그 전에도 저보고 ‘이제는 좀 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거든요.”(홍 코치)

예상과 달리 큰딸은 엄마의 기대를 저버렸다. 홍 코치는 다시 코트에 나와 배구공을 때리기 시작했다. 딸은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가면 엄마도 가야지. 엄마 혼자라면 힘들어도 아빠가 옆에 있잖아. 엄마가 아빠 좀 도와줘. 그럴 사람 엄마밖에 더 있어?”

원곡중은 부부가 복귀한 뒤 제자리를 찾았다. 2010년 9월 CBS배를 시작으로 출전하는 대회마다 우승을 휩쓸고 있다. 지난해 4관왕, 올해는 이미 3관왕이다.

안산=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