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현 씨(59)는 1녀 2남 중 큰아들인 윤경신(39)과 막내 아들 윤경민(33)의 올림픽 출전 횟수를 손가락으로 꼽으며 흐뭇하게 웃었다. 한국 남자 핸드볼의 간판인 윤경신은 19세이던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때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고 27일 개막하는 런던 대회가 다섯 번째 참가하는 올림픽이다. 런던 올림픽에 나가는 국가대표 중 최다 출전이다. 2008년 베이징 대회까지 3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던 윤경민은 핸드볼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해 형제의 런던 올림픽 동반 출전은 이뤄지지 못했다.
최 씨는 아들 윤경신과 함께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16년 전 겨울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윤경신은 1996년 2월 경희대를 졸업하고 세계 최고의 핸드볼 리그로 평가받는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했다.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혼자 보낼 수가 있어야죠.”
최 씨는 아들의 독일 진출 후 3년 동안 함께 독일에서 지내며 뒷바라지했다. “경신이가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었어요. 밥이며 빨래는 말할 것도 없고 운전도 제가 직접 했죠.” 최 씨는 아들이 팀 동료들과 빨리 친해지게 해 주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집으로 동료들을 초청해 저녁을 대접했다. 윤경신이 결혼해 가정을 꾸린 뒤로 최 씨는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리그가 열리는 시즌 중에는 다시 독일로 날아갔다. 아들이 뛰는 경기는 빠짐없이 쫓아다니느라 1년 중 6개월은 독일에서 지냈다. 이러다 보니 얼굴을 알아본 독일 팬들이 사인을 요청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최 씨의 이런 아들 뒷바라지는 윤경신이 국내로 복귀한 2008년까지 13년간 계속됐다. 윤경신이 분데스리가에서 득점왕을 8차례 차지하면서 이룬 통산 최다 득점(2908골)과 한 시즌 최다 득점(324골)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기록이다.
핸드볼에서 일가를 이룬 윤경신이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핸드볼 선수가 되겠다는 걸 처음에는 반대했다. “초등학교 때인데 어느 날 갑자기 집에 오더니 핸드볼을 하겠다는 거예요. 농구도 있고 다른 인기 종목들 많은데 왜 하필 핸드볼인가 싶었죠. 내 피를 이어받았나 싶기도 했고요. 아들하고 핸드볼 공 던지기 놀이를 종종 했었는데 괜히 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최 씨는 초등학교 때 핸드볼 선수였다. “안 된다고 말려도 소용없더라고요. 며칠을 계속 조르는 바람에 한번 해보라고 했죠. 그게 지금까지 온 거예요.”
어머니는 아들의 이번 올림픽 출전도 말렸다고 한다. “경신이 나이가 한국 나이로 올해 마흔이에요. 아무리 경신이라도 예전의 몸 상태가 아닌데 전성기 때처럼 잘할 수는 없어요.” 최 씨는 사람들이 ‘윤경신이 뛰어도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까 봐 걱정스럽다고 했다. 아들이 전성기 때의 모습으로 팬들의 머릿속에 남았으면 하는 부모의 욕심 같은 것이라고 했다. 윤경신은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중 최고령 선수다.
“경신이가 ‘한국 핸드볼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런던에 꼭 가야 된다’고 하더군요.” 이 말을 듣고 최 씨는 ‘이번에도 말려봐야 소용없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올림픽이 될 텐데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응원해야죠.”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