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1948년 힘겹게 도착한 런던, 그래도 태극기는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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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6일 03시 00분


사진으로 보는 한국 올림픽 도전 64년



《나라 없는 설움에선 벗어났지만 한국은 여전히 힘없고 가난한 나라였다. 2000만 국민의 성원이 없었다면 한국이 1948년 런던 올림픽에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시 런던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가 되지 않았던 한국은 2만 달러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5000만 국민이 태극전사를 응원한다. 한국 올림픽 64년 역사를 사진으로 돌아본다. 》

[1] 1948년 런던… 태극기 처음 휘날리며


요즘은 비행기로 11시간이면 가는 곳. 64년 전엔 그야말로 머나먼 타국이었다. 한국 대표팀은 배를 타고 부산에서 출발해 홍콩∼태국 방콕∼인도 봄베이∼이탈리아 로마를 거친 고단한 여정 끝에 21일 만에 런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은 7개 종목 선수 40여 명을 포함해 약 70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출전한 한국은 역도와 복싱에서 동메달 2개를 땄다. [2] 1976년 몬트리올… 양정모 첫 금메달


올림픽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진 것은 1976년 몬트리올 대회가 처음이다. 그해 8월 1일 폭염과 가뭄을 겪고 있던 국민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23세이던 한국의 양정모(가운데)가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건국 최초로 금메달을 딴 것이다. 처음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올림픽에 출전한 1948년 이후 28년 만의 쾌거였다. 한국은 이전까지 7차례 올림픽에서 은 5, 동메달 7개를 얻는 데 그쳤다. 한국 여자배구는 이 대회에서 구기 종목 최초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엔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올림픽이었다.

[3] 1988년 서울… 한국, 세계의 중심에 서다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서울은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1988년 대회 개최지로 선정됐다. 7년의 준비 끝에 9월 17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다. 변방이던 한국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당시 역대 최대규모(159개국, 선수 8391명 참가)로 열린 서울 올림픽은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12년 만에 미국과 소련이 이념의 장벽을 허물고 함께 참가한 평화의 축제였다. 한국은 금 12, 은 10, 동메달 11개로 소련, 동독, 미국에 이어 종합 4위를 차지했다.


[4] 1992년 바르셀로나… 두 마라톤 영웅의 만남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왼쪽)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손기정 선생을 찾아가 인사하고 있다. 손 선생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하며 인사차 들렀던 황영조에게 “자네가 56년 마라톤 노메달의 한을 풀어 나를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해달라”고 했고 이 말을 가슴에 새긴 황영조는 약속을 지킨 뒤 스탠드에 있던 선생을 찾았다. 새벽잠을 설치며 황영조를 응원했던 국민들은 두 영웅의 사진을 보고 세월을 거스르는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5] 1996년 애틀랜타… 작은 거인 심권호

세계를 안아 굴린 ‘매트 위의 작은 거인’ 심권호. 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그레코로만형 48kg급 결승에서 알렉산드로 파블로프(벨라루스)를 연장 접전 끝에 4-0으로 꺾고 한국에 대회 첫 금메달을 안겼다. 결승전을 마친 뒤 심판이 심권호(오른쪽)의 손을 번쩍 들고 있다. 4년 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심권호는 그레코로만형 54kg급으로 체급을 올려 출전해 다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개인 종목에서 2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는 역사를 썼다.

▼ 이젠 세계가 부러워한다, 스포츠강국 코리아의 열정을 ▼

[6] 2000년 시드니···남북이 하나 되다

스포츠는 때론 체제와 이념을 뛰어넘는 힘을 발휘한다. 2000년 9월 15일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이 그랬다. 한국과 북한은 분단국가 최초의 올림픽 개막식 동시입장으로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 남북한 선수들이 케냐에 이어 96번째로 입장하자 관중 12만여명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주경기장에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공동 기수를 맡은 한국 여자농구 대표 정은순(오른쪽)과 북한 유도코치 박정철이 한반도기를 높이 흔들고 있다.
[7] 2000년 시드니… ‘세계의 허 찌른’ 김영호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래 펜싱은 단 한 번도 아시아에 정상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100년 넘게 이어진 유럽의 높은 벽을 허문 건 ‘세기의 검객’ 김영호였다. 그는 2000년 시드니 대회 남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에서 세계 랭킹 1위 랄프 비스도르프(독일)를 15-14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8] 2004년 아테네… ‘금빛 조준’ 여자 양궁

올림픽 금메달보다 국내 대표팀 발탁이 어려운 종목이 두 가지 있다. 바로 올림픽의 양궁과 겨울올림픽의 쇼트트랙이다. 태극 궁사들은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이후 금 16, 은 9, 동메달 5개를 목에 걸며 세계 최강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3개의 금메달을 따낸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신궁(神弓) 3총사’ 윤미진 박성현 이성진(왼쪽부터)이 여자단체전에서 중국을 241-240으로 꺾고 올림픽 5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당시 막내였던 이성진은 런던에서 올림픽에 처음 출전하는 기보배 최현주를 이끌고 금메달을 노린다.

[9] 2008년 베이징… 세계를 들어올린 장미란


2008년 8월 16일 베이징 올림픽 역도 여자 최중량급(75kg 이상급) 경기가 열린 베이징항공항천대 체육관. 25세 장미란은 바벨을 내려놓은 뒤 술렁이는 관중을 향해 양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장미란이 들어올린 무게는 인상 140kg, 용상 186kg에 합계 326kg이었다. 인상 용상 합계 모두 세계신기록. 2위 올하 코로브카(우크라이나)를 49kg 앞서는 역대 최고 격차 금메달이었다. 올해 4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인상 용상 합계 3관왕에 오르며 여전한 기량을 과시한 그는 런던에서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한다.

[10] 2008년 베이징… 9전 9승 한국야구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국내 프로야구 부흥의 도화선이었다. 한국 야구대표팀은 숙적 일본과 야구 강국인 미국과 쿠바 등을 상대로 9전 전승의 드라마를 쓰며 남자 단체 구기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따냈다. 김경문 감독의 지휘 아래 최고의 선수들로 진용을 갖춘 한국은 준결승에서 일본을 6-2로, 결승에서 쿠바를 3-2로 물리치며 신흥 야구 강국으로 우뚝 섰다. 아쉽게도 이번 런던 올림픽에 이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도 정식 종목에서 제외된 야구는 2020년 올림픽 재진입을 노린다.


글=스포츠레저부  
사진=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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