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 징크스, 그런 건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슬럼프 벗어나려고 안 해본 게 없었어요.”
삼성 배영섭(26)은 올 시즌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지난해 혜성처럼 등장해 삼성의 1번타자 자리를 꿰찬 뒤 신인왕에 올랐지만 올 시즌은 출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개막 후 5번째 경기인 4월 13일 대구 넥센전 7회 4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칠 때까지 18연타수 무안타에 시달렸다. 당장 “2년차 징크스 아니냐”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올 시즌은 프로 데뷔 4년째. 그러나 지난해 신인왕을 받았으니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라고 할 만했다.
겨우내 열심히 땀을 흘렸기에 배영섭은 시즌 초반의 부진에 대해서도 “단지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여겼다. 삼성 류중일 감독도 ‘1번타자가 살아나야 팀이 산다’는 신념으로 부진한 그를 믿고 기용했다. 그러나 1할대 타율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5월 말에는 2군에 다녀오기도 했다.
“감독님께도, 팀에도, 팬들에게도 너무나 죄송했어요. 특히 시즌 초반 팀 성적도 부진했잖아요. 모든 게 제가 잘못해서 그런 것 같아 더더욱 미안했어요. 부진 탈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정말 안 해본 게 없었는데….”
비디오를 보며 지난해와 달라진 점을 찾기 위해 뚫어지게 연구했다. 배트를 내렸다가 올려보기도 했고, 스탠스를 조정해보기도 했다. 늪에 빠진 사람이 발버둥을 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 듯, 그가 몸부림을 칠수록 부진의 늪은 깊어만 갔다.
그러나 비우면 채워진다고 했다. 자신을 내려놓고 “내가 할 것만 하자”고 마음을 비우자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9일 문학 SK전(4타수 2안타), 10일 대구 LG전(4타수 2안타), 11일 대구 LG전(5타수 3안타)까지 안타를 몰아치기 시작했다. 12일 대구 LG전에도 1번타자로 선발 출장한 그는 3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7-6 승리에 앞장섰다.
1회 득점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좌익선상 2루타로 출루했고, 0-0이던 3회 무사 1·2루 찬스선 정확한 희생번트로 선제득점의 발판을 마련했다. 3-1로 앞선 4회 2사 1·2루선 2타점 우익선상 2루타를 날렸다. 6회에는 LG 좌익수 정의윤의 다이빙캐치에 걸려 아웃됐지만 최근의 좋은 타격감을 이어갔다.
최근 4연속경기 멀티히트. 이 기간 16타수 9안타의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마침내 ‘지난해의 배영섭’으로 완벽하게 돌아온 느낌이다. 기동력을 갖춘 그가 살아난다면 삼성의 화력은 배가 된다. 오랫동안 인내하며 그를 기다려온 류 감독의 얼굴에도 비로소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