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과 청계천을 거닐던 엄마 둘이 반가운 비명을 질렀다. 함께 사진을 찍자는 그들의 요청을 김연경(24)은 씩 웃으며 받아들였다. 정성껏 사인도 해줬다. 엄마들은 “이전에는 여자 배구를 본 적이 없다. 올림픽에서 보고 팬이 됐다”며 즐거워했다. 10대 소녀도, 50대 흡연 단속요원도, 태국에서 온 관광객도 김연경을 알아보고 뒤를 따라다닌다. 여자 배구의 ‘월드 스타’는 처음 출전한 올림픽을 통해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인기인이 됐다.
“올림픽이 정말 큰 대회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그전까지는 열성 배구 팬들만 저를 알아보셨어요. 해외에서 뛰다 보니 경기 중계도 안 되잖아요. 이제는 달라요. 정말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시네요.”
한국 여자 배구는 36년 만에 4강에 진출했다. 김연경이 있어 가능했다. 초반부터 득점 선두를 질주한 그는 이 부문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이고 국제배구연맹(FIVB)이 선정한 대회 최우수선수(MVP)로도 뽑혔다.
“MVP가 있다는 건 알았어요. 터키에서 뛰고 있는 브라질 파울라 페케누 선수가 베이징 대회 MVP였거든요. 그때도 우승팀에서 MVP가 나왔기 때문에 제가 받을 거라곤 전혀 예상을 못했어요. 상을 받는 것은 아니고 기록으로만 남는 건데 그래도 좋죠. 올림픽에서 인정받은 거잖아요.”
김연경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게 여전히 아쉽다고 했다. 하필 상대가 일본이라 더 그랬다. 한국은 5월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일본을 3-1로 눌렀다.
“메달을 꼭 딸 거라고 기대했기에 더 아쉽죠. 심판 판정을 비롯해 유독 그날따라 흐름이 많이 끊겼어요. 반면 일본은 5월에 만났을 때와는 달랐어요. 전체 수비도 좋았고 한국전에 강한 사코타 사오리도 평소보다 잘했고…. 우리가 일본보다 더 간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후회가 많이 남습니다.”
성격이 시원시원한 그는 평소 잘 울지 않는다. 미국과의 준결승에서 졌을 때도 “나중에 메달 따고 울겠습니다”라고 말해 분위기를 밝게 할 정도였다. 일본전에서는 달랐다. “동료들은 많이 울었지만 아쉽긴 해도 눈물은 안 났어요. 그런데 라커룸으로 돌아와 휴대전화에 들어와 있는 응원 메시지를 본 순간 울컥하더라고요.”
분위기를 바꾸려 질문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남자친구가 있느냐는 물음에 곧장 “없다”고 대답했다. 이상형을 묻자 기다렸다는 듯 말문이 터졌다. “탤런트 조인성 씨요. 만나서 꼭 밥 한번 먹고 싶습니다. 처음 이런 질문 받을 때부터 조인성 씨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중간에 잠깐 (아이돌그룹 2PM의) 닉쿤 씨로 바꾼 적이 있어요. 그러자 주위에서 ‘그러면 조인성 씨가 너 안 만나줄걸’ 그러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계속 이러면 언젠가는 조인성 씨와 밥 한번 먹지 않을까요.”
그의 키는 192cm다. 운동선수가 아니라면 남자들 사이에서도 보기 드문 키다. 말이 나온 김에 남자친구의 기준을 물었다. “키는 180cm 이상이면 좋겠어요. 예전엔 185cm라고 얘기했는데 남성 팬들이 그런 키 많지 않다고 하셔서…. 장신인 선배 언니들 보면 남편의 키가 더 작은 경우도 많은데 저는 클수록 좋아요. 2m 넘어도 좋습니다.”
생애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계약 문제를 놓고 원 소속팀 흥국생명과 갈등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터키 페네르바흐체와 계약을 했어요. 러시아 클럽에서 더 좋은 조건을 내걸었지만 뛰던 팀이 더 나을 것 같아서요. 터키 리그에서 우승하고 최우수선수가 되는 게 이번 시즌 목표인 만큼 계약 관련 문제가 잘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 흥국생명은 제가 꼭 돌아올 팀이니까요.”
다시 올림픽으로 화제를 바꿨다. 이번에 아쉬웠던 부분을 4년 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털어내고 싶지 않으냐고 물었다. “2016년요? 너무 한참 뒤라 뭐라고 말씀드릴 게 없네요. 시간이 지나면 큰 목표로 다가오겠죠. 이번에 느낀 건데 한국 여자 배구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세계 흐름을 잘 읽고 따라간다면 저 못지않은 선수들이 나올 겁니다. 저만 해도 터키에서 뛰지 않았다면 올림픽에서 MVP가 되지는 못했을 거예요.”
‘월드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아직 그의 나이 스물넷.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고 자평하는 그가 있는 한 4년 뒤 한국은 40년 만의 올림픽 메달 꿈을 다시 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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