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 8강전에서 일본 관중들이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들고 입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30일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일본 관중은 관람석 1층과 2층에서 깃대에 가로 폭이 1m 이상 되는 욱일승천기를 꽂아 흔들며 자국 선수들을 응원했다. 주변 관중들은 욱일승천기 근처에서 열광적인 응원전을 펼쳤다. 욱일승천기는 일본이 1940년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아시아 각국을 침공했을 때 사용했던 군기다.
숙명여대 일본학과 박진우 교수(56)는 “욱일승천기는 떠오르는 태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일본인에게는 영광스러운 과거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지만 아시아 각국에는 침략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일본인들이 국제 행사에서 욱일승천기를 흔드는 것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는 집단의식의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당초 일본축구협회는 정치적인 논란을 우려해 욱일승천기 반입을 금지했으나 지나치게 정치적 해석을 했다며 17일 방침을 철회했다. 이에 일본 팬들은 우익단체를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욱일 깃발을 들고 한일전에 집합하자’는 선동적인 글을 퍼뜨렸고 한국 팬들은 ‘파렴치한 행위’라며 반발했다.
2001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대책반 실무반장을 지낸 성삼제 대구시 부교육감(53)은 “제국주의 시절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일본이 철저한 반성을 했다면 동아시아인들에게 아픔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일본 정부에서 스스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욱일승천기 논란은 우파의 계산된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현택수 교수(54)는 “일본 내에서도 극우단체는 비판을 많이 받지만 정작 욱일승천기를 들고 시위나 스포츠 행사에 나타날 경우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군사적으로 강대국이었던 과거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자신들의 행동을 비판하는 아시아 국가를 적으로 만들어 결속을 다지려는 정치적인 판단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일본이 침체기를 겪으면서 우파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이후 국가적인 위기의식이 증폭되는 과정에서 국수적인 통합의 상징으로 욱일승천기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FIFA는 29일 양 팀 사전미팅을 통해 “정치적인 응원 문구나 배너, 플래카드 등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지만 관중들이 욱일승천기를 드는 것은 문제 삼지 않았다. FIFA가 욱일승천기가 지닌 문제점을 심각한 것으로 판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욱일승천기가 지닌 의미와 문제점에 대해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 교수는 “과거 역사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문제를 제기해 욱일승천기에 대한 FIFA와 국제사회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유럽에서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포로 생활을 겪었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욱일승천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크지는 않은 편”이라며 “중국 등 태평양전쟁 피해 당사국들과 꾸준히 국제사회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