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고, 새까맣고, 영어도 못하고, 거기다 공도 잘 못 치는 놈이 다른 선수들은 안 하는 것까지 하고 있더라고요.”
최경주(42·SK텔레콤)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진출한 첫해인 2000년 초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가 말한 다른 선수들이 안하는 것은 바로 ‘흡연’이었다.
27일 경기 여주 해슬리나인브릿지 골프장. 자신의 이름이 걸린 CJ인비테이셔널(10월 4∼7일)에 출전하기 위해 귀국한 최경주는 “품격 있는 골프대회로 만들기 위해 담배연기, 담배꽁초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경주는 한때 하루 3갑을 피우는 골초였다. 하지만 미국 진출 첫해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건강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담배를 끊었다. 그 후 13년째 한 번도 담배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는 “담배를 끊으니 좋은 게 참 많더라.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아침에 일어날 때도 개운했다. 골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가 만약 계속 담배를 피웠다면 이 나이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주민등록상 1970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68년에 태어났다. 한국 나이로는 벌써 45세인 셈이다.
최경주는 올해 PGA 투어에서 우승 없이 톱10에 2번밖에 들지 못했다.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이제 하향곡선을 그리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그는 “모든 건 내 안의 자아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나이 때문에 공이 안 간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자기 관리를 하고 연습량을 늘리면 앞으로 5년은 더 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경주는 2008년 소니오픈 우승 이후 지난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까지 약 40개월간 ‘우승 가뭄’에 시달렸다. 그때도 ‘이제 끝난 게 아니냐’는 눈길이 적지 않았지만 그는 “장거리 비행을 하려면 중간에 급유를 해야 하지 않느냐.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라고 말한 뒤 지난해 화려하게 재기했다.
PGA에서 8승을 거두고 있는 그는 “여전히 목표는 10승이다. 올해는 더 잘하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던 것 같다. 내년에는 PGA 진출 첫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연습했던 초심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 시기는 그가 담배를 끊고 골프에만 모든 정신을 매진했던 때다.
최경주의 의지에 따라 이번 대회를 찾는 갤러리들은 골프장에 입장할 때 휴대전화와 담배, 라이터를 맡기면 기념품을 받는다. 흡연은 화장실 옆에 설치된 3곳의 지정 구역에서만 가능하다. 올해 대회는 디펜딩 챔피언 최경주를 비롯해 벤 커티스(미국), 노승열(타이틀리스트) 등 120명이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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