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은 20일 홈구장 스틸야드에서 열린 하나은행 FA컵 결승에서 연장 후반 14분 박성호의 결승골로 경남FC를 1-0으로 꺾었다. 2008년에도 경남을 2-0으로 물리친 포항은 대회 원년인 1996년을 합쳐 통산 3번째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포항은 우승 상금 2억 원과 함께 모기업 포스코로부터 4억원 보너스를 추가 지급받는다. 주장 황지수는 최우수선수(MVP·상금 300만원)에 선정됐다.
○절실했던 첫 경험
종료 휘슬이 울리자 황선홍 감독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홈 서포터스 쪽 스탠드 철망에서 주먹을 불끈 쥐는 장면도 백미였다. 이유가 있었다. ‘준우승’의 설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3년 간 부산을 이끈 황 감독은 컵 대회와 FA컵에서 한 번씩 준우승에 그쳤다.
감격의 그날 밤 황 감독은 “월드컵에서 골 넣고 싶다는 생각 못지않게 우승이 절실했다. 계속 징크스가 이어지면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사실 눈물은 킥오프 전부터 나왔다.
“안 울고 싶었는데, 경기 전부터 눈시울이 불거졌다. 경기가 끝나자 (울먹이는) 와이프를 보곤 안 울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제자들과 라커룸에서 마주하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좋을 땐 무슨 말을 하지?” 웃음이 넘쳤다. 베테랑 노병준은 “2009년 컵 대회 결승에서 만났을 때 우리 감독님은 적장이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올해는 우승시켜 드리고 싶었다”며 웃었다.
○준비된 자의 거짓말
120분 혈투 내내 황 감독은 짐짓 태연한 척 했다. 물론 속으론 전전긍긍했다. 승부차기로 가면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올 시즌 초반만 해도 포항은 지독한 페널티킥(PK) 징크스에 시달렸다. 연장에 들어설 때 황 감독은 선수들에게 “내 수첩에 상대 PK 순번이 적혔있다. 편하게 뛰라”고 주문했지만 솔직히 전혀 몰랐다. “어떻게 (상대까지) 파악하겠냐. 우리 팀 챙기기도 바빴다.” 하지만 효과는 컸다.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고,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발휘했다.
“부산에서는 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이젠 여유가 생겼다. 경기 중에도 기다릴 줄 알게 됐다. 감정 기복이 덜 하다. 선수들의 심리적인 부분을 생각하게 됐다.”(황 감독)
수혜자는 박성호였다. 포항이 새로 들고 나왔던 ‘제로(0)톱’ 공격 전술은 숱한 화제를 낳았지만 공격수들에게는 자존심의 문제였다. 둘은 계속 대화하며 의견을 나눴고, 박성호는 가장 중요할 때 한 방을 터뜨려 묵은 체증을 시원히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