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심판학교 뜨거운 열기… 120명 중 20명이 여성
고교 홈런왕-청각장애인… 포기할수 없는 야구 열정
“그 쪽으로 가면 안 되죠. 포수 태그가 보이는 방향으로 움직이세요.”
호랑이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홈 플레이트로 파고드는 주자와 같은 방향에 서 있다가는 혼나기 일쑤다. “이러면 실전에 못 나갑니다. 3만 관중이 심판 판정만 지켜본다고 생각하세요.” 명지전문대 야구심판학교 황석중 교감은 수강생들에게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시켰다. 25일 서울 남가좌동 명지전문대에서 열린 제4기 야구심판학교 현장은 뜨거웠다. ‘설렁설렁’은 없다. 재미삼아 나온 수강생도 없다. 이들에게 야구는 ‘삶’ 그 자체였다.
○ ‘금녀의 벽’은 없다
120여 명의 일반과정 수강생 가운데 여성 참가자는 20명. 지난해 4명에서 5배나 늘었다. 신세연 씨(26)는 야구 심판이 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뒀다. 친구들은 “너는 김하늘(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사회인야구 심판 역할)이 아니다”며 극구 말렸다. 그러나 신 씨는 ‘그라운드에 서고 싶다’는 꿈을 이루고 싶었다. 어릴 적 리듬체조 선수생활을 한 덕에 운동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축구는 이미 ‘레드카드 주는 여자(심판)’가 있더라. 나는 프로야구 최초의 ‘볼카운트 세는 여자’가 되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 고교 홈런왕도 “판정은 어려워”
고교 때까지 선수생활을 했던 이건일 씨(32)에게 ‘심판’은 아직 낯설다. 그는 제물포고 3학년 때 출전한 화랑대기에서 홈런 5개를 터뜨린 강타자였다. 당시 부산고 2학년이던 추신수(클리블랜드)는 홈런 3개를 쳤다. 이 씨는 개인사정으로 야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라운드는 떠나지 못했다. 사회인야구 12년차인 그는 “야구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기분”이라며 즐거워했다.
○ 우렁찬 목소리는 없지만….
심판에게는 절도 있는 동작과 우렁찬 목소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박대순 씨(26)는 그럴 수 없다.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듣지 못하는 대신 동료들보다 정확한 수신호와 판정을 배우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충주성심학교에서 선수로 뛰었던 박 씨는 허리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뒀다. 그가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온 건 청각장애 야구 심판을 키우고 싶어서다.
아마추어 야구에서는 프로처럼 4명의 심판을 둘 여력이 없다. 2심제가 일반적이고 여의치 않을 경우 주심 혼자 판정을 할 때도 있다. 타구 방향이나 주자 상황에 따라 인접한 베이스까지 챙겨야 한다. 참가자들은 “수업을 들으며 야구를 보는 깊이가 달라졌다. 이젠 심판 판정에 실수가 있어도 무턱대고 욕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김광철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학교장은 “사회인 야구는 프로야구 700만 관중시대의 밑거름이다. 야구 발전을 위해선 아마추어 야구부터 양질의 심판이 있어야 한다”며 심판학교의 의미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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