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124승, ML 아시아인 최다승

  • Array
  • 입력 2012년 11월 30일 03시 00분


다저스 에이스로 펄펄 날다 ‘텍사스의 대박’뒤 내리막길

박찬호가 20대였을 때 시속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는 ‘코리안 특급’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러나 마흔 살을 앞둔 그의 직구는 140km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결국 변화구 투수로 전락했다. 화려한 메이저리그 스타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은퇴를 선언하기까지의 과정은 다사다난했다.

박찬호는 한양대 시절인 1993년 2월 호주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강속구를 무기로 미국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듬해 1월 LA 다저스와 계약하며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됐다.

그러나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2경기 만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다. 공은 빨랐지만 제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을 눈물 젖은 빵을 먹은 끝에 1996년 빅리그로 돌아와 5승(5패)을 거뒀다. 1997년부터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따내며 다저스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그는 ‘슈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 사단에 합류한 뒤 2002년 텍사스와 5년 동안 최대 6500만 달러(약 704억 원)라는 초대형 자유계약선수(FA) 대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박찬호는 텍사스에서 2002년 9승(8패)에 그친 데 이어 허리와 햄스트링 부상으로 추락했다. ‘먹튀’ 논란 속에 2005년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됐다.

박찬호는 2005년 12승(8패), 2006년 7승(7패)을 거두며 재기하는 듯했지만 과거의 명성을 되찾지는 못했다. 2007년 뉴욕 메츠와 계약했지만 단 1경기밖에 뛰지 못하고 방출됐다. 2007년 휴스턴과는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럼에도 박찬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2008년 친정팀 다저스로 돌아와 4승(4패)을 거뒀고 2009년 필라델피아 불펜으로 첫 월드시리즈 무대까지 밟았다. 2010년 명문 뉴욕 양키스 유니폼까지 입었다. 그렇게 2010년 아시아 투수로는 최다인 124승(98패)을 거뒀다.

그러나 박찬호는 욕심을 냈다. 지난해 한국 대신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에 입단했다. 1승(5패)에 그치며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머물렀다. 결국 올해 8개 구단의 특별한 양해를 얻어 고향 팀 한화 유니폼을 입었지만 예전의 구위를 회복하진 못했다. 그의 야구인생은 메이저리그에서 화려하게 빛났지만 마지막은 아쉬움만 남은 시간이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박찬호#아시아인 최다승#다저스#텍사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