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훈 전자랜드 감독(45·사진)은 담담했다. 명문 용산고, 연세대를 거쳐 현대에 입단해 프로농구 출범 후 두 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한 그였지만 기량과 인기 모두에서 스타플레이어로 불릴 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전투력은 뛰어났어요. 작은 키(173cm)로 인한 불리함과 그 밖의 단점들을 극복하려고 개인 훈련을 참 많이 했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를 지도하고 있습니다.” 전자랜드는 이번 시즌 ‘약체’로 분류됐지만 12일 현재 3위에 올라 있다. 6일 끝난 프로-아마추어 최강전에서는 프로팀 중 최고 성적(준우승)을 거뒀다. 유 감독은 전자랜드 선수들에게 어떤 마법을 부린 걸까.
1985년 겨울 연세대 캠퍼스 내의 백양로. 새벽부터 한 청년이 홀로 아스팔트 길 위에서 드리블을 하고 있었다. 작은 손으로 이리저리 튀는 공을 잡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86학번으로 연세대 입학을 앞둔 유도훈의 모습이다. 유 감독은 “길이 울퉁불퉁해서 공이 제멋대로 튀었다. 가드가 볼을 잘 컨트롤하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공을 잡아낼 수 있는 기본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천재성을 타고 나지 못한 대신 기본기를 탄탄히 해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려고 했다는 얘기다.
유 감독이 전자랜드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것 역시 ‘기본기’다. 문태종, 강혁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스타플레이어가 없는 전자랜드가 강팀을 상대하려면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들로 조직적인 농구를 해야 승산이 있다고 봤다. 유 감독은 “슛, 드리블, 패스 등은 프로 선수라면 누구든지 개인의 노력에 따라 향상될 수 있는 부분이다”라고 확신하고 있다.
유 감독은 현대에서 뛸 당시 점프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10kg의 납 조끼를 입고 산에 오르는 훈련을 반복했다. 그는 “단신의 약점을 점프력으로 보완하고 하체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프로 선수는 단점을 극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전자랜드 선수 중 납 조끼를 입은 선수가 있다. 바로 신인 포워드 차바위(23)다. 입단 당시 그의 몸무게는 100kg에 육박했지만 비시즌 동안 납 조끼를 입고 12kg을 감량했다. 스피드가 눈에 띄게 좋아진 그는 프로 무대에 빠르게 적응하며 ‘문태종의 뒤를 이어 전자랜드의 포워드진을 책임질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인 선수와 궂은일을 하는 식스맨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유 감독은 “너희들이 성장하는 만큼 전자랜드가 강해진다”며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감독으로서는 아직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유 감독. 등산이 취미인 그는 ‘A급 감독’을 향한 자신의 꿈을 ‘산에 오르는 것’에 빗대어 설명했다. “프로에 몸담고 있는 것 자체가 7분 능선쯤 와 있는 겁니다. 정상을 향한 길은 험난하지만 선수들과 함께 발을 맞춰 오르고 또 오르면 반드시 정상의 경치를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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