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투어 진출 박진 “내년 시즌 반드시 첫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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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6일 10시 16분


박진. 동아닷컴DB
박진. 동아닷컴DB
[동아닷컴]

‘터널비전(Tunnel Vision)’이란 말이 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마치 터널 끝에 있는 목표만 바라보고 주변의 다른 것들을 전혀 보지 못하는 일종의 도착현상을 일컫는 표현이다.

최근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 퀄리파잉스쿨(Q스쿨)을 7위로 통과한 재미교포 박진(33)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터널비전 현상을 겪었다.

부모님의 권유로 6세 때 처음 골프를 시작한 그는 일찍이 신동소리를 들었다. 7세 때 미국으로 이민간 그는 각종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14세 되던 해에 제패한 ‘롱비치 챔피언십’ 대회는 역대 최연소 우승기록으로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16세 때에는 PGA 역사상 최연소로 닛산오픈 참가자격도 획득했다.

이런 화려한 성적을 바탕으로 아마추어 시절에는 타이거 우즈(37)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그였기에 터널 끝에 보이는 화려한 우승 외에 다른 것은 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뒤늦게 찾아온 슬럼프는 그의 자신감을 뺏어갔고 오랜 시간 그를 그린 위의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으로 머물게 했다.

박진은 2007년 Q스쿨을 통과하고 2008년 PGA 투어에 나섰지만 우승은 고사하고 상금순위 120위권 밖으로 밀려나 이듬해 PGA 투어 출전 자격마저 상실했다.

“처음 PGA 투어에 나섰을 땐 어려서 너무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PGA 투어 자격만 획득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잘 압니다. PGA 투어 출전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요. 우승 외에 주변의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시야나 지혜도 생겼습니다.”

박진은 지난 4년간 PGA 2부리그인 네이션와이드 투어에서 뛰며 와신상담했다. 짧지 않은 기간도 그렇지만 경제적인 문제 등 각종 난관이 그를 힘들게 했다.

“신앙의 힘과 아내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여기까지 왔으니 반드시 우승컵을 들고 싶고,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4년 만에 PGA 투어 출전자격을 획득한 그의 얼굴에서 비장한 각오는 물론 성숙함마저 엿볼 수 있었다.

다수의 골프전문가들은 차분하고 세심한 성격에 실력까지 겸비한 박진이 프로에 진출하면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슬럼프는 길었고 과거 명성에 걸맞은 성적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결혼을 통한 안정된 생활과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 PGA 투어에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동아닷컴은 최근 미국 현지에서 박진 선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내년 1월 하와이에서 열리는 PGA 투어 소니오픈을 앞두고 훈련에 여념이 없는 그에게 우리가 알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마추어 시절 최우수 선수에 선정됐던 박진(왼쪽)과 타이거 우즈의 모습. 동아닷컴DB
아마추어 시절 최우수 선수에 선정됐던 박진(왼쪽)과 타이거 우즈의 모습. 동아닷컴DB

다음은 박진과의 일문일답.

-전보다 얼굴이 좀 야윈 것 같다.

“최근 Q스쿨을 통과했고 대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년 1월부터 시작되는 PGA 투어를 준비하느라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런 것 같다.”

-골프선수들도 다른 종목처럼 체력훈련을 따로 하나?

“그렇다. 타이거 우즈의 전성기가 열리면서부터 골프선수들도 예전과는 달리 입는 것 먹는 것 체력훈련 등 모든 것이 치밀하고 세심해 졌다.”

-한국 이름과 영어 이름이 다르다고 들었다.

“본명은 박세진이다. 그런데 프로로 전향하고부터 미국에서 진 박(Jin Park)으로 불리다 보니 지금은 박진으로 통한다.”

-4년 만에 PGA 투어 출전자격을 획득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물론 기쁘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다. 어렸을 때는 PGA에만 진출하면 모든 게 끝난 것처럼 흥분했었는데 이젠 뭐랄까? 오히려 차분하다. 인생이나 골프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

-7세 때 미국으로 이민 왔다고 들었는데 한국말을 매우 잘한다.

“부모님 덕분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너는 어디에 살던지 늘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라는 말씀을 들으며 자랐다. 그러다보니 여느 이민가정의 아이들처럼 집에서 영어를 쓰는 일은 용납되지 않았다.”

-슬하에 딸만 두 명 있다고 들었다. 그들에게도 한국말을 가르치나?

“물론이다.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살려면 한국말은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들이 영어를 통해 자신의 뿌리와 역사에 대해 배울 수도 있지만 통역이나 번역을 통해 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아내도 어린 나이에 이민 왔지만 우리 가족 모두는 집에서 한국어만 쓴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미국에 온지 26년이 지났고 시민권이 없어 불편한 점도 있지만 항상 한국국적을 유지하며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살고 싶다.”
박진. 동아닷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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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골프신동 소리를 들으며 타이거 우즈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들었다.

“내가 13세, 우즈가 17세 때 각각 자신의 나이 그룹에서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 우스개 소리로 나도 한 때는 잘 나갔다, 하하. 그러나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다. 현재와 미래가 더 중요하다.”

-아마추어 시절 경력은 화려했지만 프로로 전향한 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아마추어 때 너무 잘한 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은 것 같다. 우승 외에 다른 성적은 별 의미나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기대했던 성적이 나오지 않자 슬럼프가 찾아왔고 자신감마저 잃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예전의 자신감을 다시 찾았나?

“그렇다. 자신감은 물론 예전에는 없던 지혜와 더불어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다. PGA 투어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머무는 것도 우승만큼이나 값지고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골프선수로서 자신의 장단점을 꼽자면?

“단점이라면 서양선수에 비해 파워가 부족하다 보니 그들보다 비거리가 짧은 편이다. 하지만 이는 정교한 퍼팅이나 쇼트게임 등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장점이라면 눈물젖은 빵을 오래 먹어서 그런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끈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예전에 같이 운동하던 동료들도 이런 내 모습을 보면 낯설어한다.”

-2부리그에서 뛰었던 지난 4년간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

“그렇다. 야구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차이가 심하듯 골프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PGA 투어에서 한 번 밀려난 선수가 다시 PGA에 복귀하는 것이 우승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말할까. 어려웠던 시간을 구구절절이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남들보다 일찍 경험했던 좌절과 고뇌의 시간들이 나에게 지혜와 겸손함을 가져다 준 것처럼 앞으로 PGA 투어 생활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극복했나?

“슬럼프에 빠져 좌절을 맛보며 힘들어할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녀의 헌신적인 내조와 기도의 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할 만큼 아내와 신앙의 힘이 컸다. 반드시 PGA 투어 우승컵을 아내에게 안겨주고 싶다.”

-내년 PGA 투어 일정은 어떻게 되나?

“대략 35개 정도의 대회가 있는데 외국에서 열리는 투어는 제외하고 미국에서 열리는 25개 대회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1월 10일 하와이에서 열리는 소니오픈부터 참가한다.”

-내년 시즌 목표가 있다면?

“우승이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르다. 예전에는 우승만 바라보고 플레이 했다면 지금은 나에게 주어진 매 순간을 즐기며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승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반드시 우승해서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고 싶다. 많이 응원해 주고 지켜봐 달라.”

로스앤젤레스=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indian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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