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0승… 이제 다시 던진다, 어제의 나를 깨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8일 03시 00분


2004년 LG 입단 → 2011년 방출 → 새해 SK합류 민경수의 희망가

20대의 민경수는 젊었고 힘과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야구를 하는 방법을 몰랐다. 2004년부터 8년간 LG 유니폼을 입고 148경기에 등판했지만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채 2011시즌 뒤 방출됐다(왼쪽). 그가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1년의 절치부심 끝에 다시 기회를 잡았다. 그것도 투수진이 강하기로 유명한 SK에서. 30세가 넘어 야구에 눈을 뜬 민경수는 이제 세상의 편견을 깨고 성공시대를 꿈꾸고 있다. LG SK 제공
20대의 민경수는 젊었고 힘과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야구를 하는 방법을 몰랐다. 2004년부터 8년간 LG 유니폼을 입고 148경기에 등판했지만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채 2011시즌 뒤 방출됐다(왼쪽). 그가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1년의 절치부심 끝에 다시 기회를 잡았다. 그것도 투수진이 강하기로 유명한 SK에서. 30세가 넘어 야구에 눈을 뜬 민경수는 이제 세상의 편견을 깨고 성공시대를 꿈꾸고 있다. LG SK 제공
보류 선수 명단에서 제외됐다고 했다. 야구 선수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잘 안다. ‘잘렸다’는 말을 듣기 좋게 표현한 것이다. 2011년 11월의 일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2004년 LG에 입단해 8년간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동안 버틴 게 용했다. 더구나 2011년엔 어깨가 아파 1군 경기에는 한 경기도 못 나갔다. 담담히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그런데 왠지 기분은 크게 나쁘지 않았다. 자유의 몸이 된다는 건 더 좋은 기회가 올 수 있는 것 아닐까. 운동이라면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했다. 어느 팀인가는 연락을 해오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도 품었다. 다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서른을 채운 ‘유망주’(?) 투수를 불러주는 구단은 없었다. 휴대전화는 끝내 울리지 않았다. ‘패배자’ 민경수(32)는 누구보다 추운 겨울을 맞아야 했다.

○ 힘이 셌던? 힘만 셌던!

그는 타고난 장사였다. 신체조건(키 185cm, 몸무게 94kg)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허벅지는 어지간한 여자 허리 사이즈인 28인치나 됐다.

경성대 재학 시절 그는 모든 운동부 선수를 통틀어 가장 힘이 셌다. 투포환을 하던 동기보다 더 많은 무게를 들었다. 스쿼트(역기를 들고 앉았다 일어서는 운동)가 대표적이었다. 예전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뛰었던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가 스쿼트로 200kg을 들었다는 얘길 듣고 그는 240kg짜리 스쿼트로 하체 운동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스피드였다. 신인이던 2004년 147km까지 나오던 구속은 2000년대 후반 140km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평범한 속도에 제구마저 불안해 왼손 투수로서의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7년에는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됐다. 다음엔 어깨가 아팠다. 야구 선수라기보다는 키 크고 힘센 동네 청년이 돼가고 있었다.

○ ‘저니맨’이 바꾼 인생

그는 누구보다 성실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운동하기로 유명했다. 시즌 중에는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이대로 운동을 그만두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운동은 하고 싶은데 운동할 곳이 없었다. 절망에서 건져 줄 마지막 구원의 손길을 찾았다. ‘저니맨’으로 잘 알려진 전 프로야구 선수 최익성(41)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익성은 ‘저니맨 야구육성 사관학교’ 출범을 준비하고 있었다. 방출 선수나 갈 곳이 없는 선수를 체계적으로 교육시켜 다시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걸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다.

이곳에서 스포츠 재활전문가인 어은실 박사를 만난 그는 민경환 크라제그룹 회장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무료로 체계적인 재활과 훈련을 받았다. 어 박사와 함께 훈련하면서 그는 그동안의 운동 방법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운동이 왜 필요한지, 공을 던지려면 어떤 근육을 키워야 하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무식하게’ 공만 던져 왔던 자신을 볼 수 있게 된 것.

마지막이라는 절실함과 체계적인 훈련 속에서 민경수는 잠재력을 서서히 찾아나갔다. 12년간의 선수생활 동안 6개 팀을 전전하면서도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던 최익성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마침내 지난해 10월, 예전처럼 쉽고 간결하게 공을 뿌릴 수 있게 됐다.

○ 세상을 향해 준비하는 돌직구

방출된 지 1년이 지난 지난해 11월. 그는 이만수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SK에서 테스트를 치렀다. 결과는 합격. 곧바로 팀 훈련에 합류했고 최근 정식 선수로 계약했다. LG 시절 두 번밖에 가보지 못한 전지훈련에도 당당히 참여하게 됐다.

2004년부터 8년간 그의 통산 성적은 148경기 출장에 승리 없이 4패, 21홀드, 평균자책 4.22. 데뷔 10년 만인 올해 그는 첫 승을 노리고 있다. 각오는 이미 섰다. “프로에 입단했을 때 꼭 해보고 싶은 건 선발 등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발, 중간이 중요치 않다. 어렵게 찾아온 기회인 만큼 스스로에게 소홀하지 않고 항상 깨어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쓸쓸히 방출의 칼날을 맞았던 민경수는 올 시즌 세상의 편견을 깰 돌직구를 던질 수 있을까.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민경수#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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