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찡꼬는 사행성 게임이지만 일본에선 국민 오락이다. 빠찡꼬 잘하는 법을 다룬 책과 잡지가 수백 권이 있다. 인터넷에는 동호회와 연구회가 넘쳐난다. 빠찡꼬를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도 있다. 연중무휴로 2만 개의 가게에서 400만 대의 게임기가 돌아간다. 그 결과 2000만 명이 연간 400조 원을 잃는다. 자동차 산업과 맞먹는 거대 시장이다. 올해 우리나라 정부 예산 342조 원보다 많다. 환율과 물가를 감안한다 해도 1인당 2000만 원씩 갖다 바쳤으니 오락이란 말이 무색하다.
일본 전지훈련과 빠찡꼬
겨울에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하는 우리 프로야구 선수들도 빠찡꼬의 유혹에 노출돼 있다. 오키나와나 규슈의 작은 도시에서 한 달여간 생활하면서 재충전을 할 마땅한 놀이문화를 찾기 힘든 때문이다.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이 나흘이나 닷새 만에 하루 쉬는 날을 이용해 빠찡꼬장에 가는 것쯤은 대체로 묵인해 준다. 술로 망가지는 것보다는 빠찡꼬가 나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1980년대 장효조에 이어 90년대 초 두 번째로 타격왕 2연패에 성공했던 한화 이정훈 코치. 방망이 하나는 참 예쁘게 쳤지만 성격은 워낙 불같아 화가 나면 말을 더듬는 그였다. 그날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두산(당시 OB) 선수 시절인 1997년 규슈 남단의 ‘깡촌’ 쓰쿠미의 한 빠찡꼬장. 이정훈은 도끼눈을 부릅뜬 채 천장에 붙어 있는 감시 카메라를 향해 연방 손 감자를 먹였다. 제법 쏟아 부었지만 잭팟(大當り·오아타리)이 터지지 않은 데 대한 항의의 표시. 분명히 중앙에서 컴퓨터로 제어를 하는데 이렇게 하면 무서워서라도 잭팟을 줄 거라는 게 손 감자의 또 다른 의도였다. 그러나 빠찡꼬의 배당은 게임기 내부의 칩에 인식시킨 확률대로 나온다. 신장개업을 했다든가, 새로운 기종의 게임이 나왔을 때 배당률이 올라가는 것을 봐선 확률 조절이 가능하다는 게 정설이지만 중앙에서 손님을 봐가며 제어하는 것은 아니다.
빠찡꼬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해프닝은 황일권이 으뜸이다. 삼성 강기웅의 뒤를 이을 대형 2루수로 주목받으며 1990년대 초 두산의 1차 지명을 받았지만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은퇴한 그는 야구보다 싸움 실력으로 더 유명했다.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박정태 코치처럼 키는 작아도 주먹은 컸던 그는 잭팟이 터졌을 때 구슬을 계속 넣어줘야 하는 빠찡꼬의 기초 룰조차 몰랐다. 잭팟을 알리는 빨간 불과 사이렌이 끝날 때까지 이거 왜 이러지 하면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날 아무 잘못 없는 게임기는 박살이 났다. 동시에 그의 큰 주먹은 한동안 붕대 신세를 져야 했다.
‘타짜’ 칭호 선동열
동서양 종목을 불문하고 타짜 칭호를 듣는 선동열 KIA 감독도 1990년대 중후반 주니치 선수 시절 빠찡꼬를 즐겼다. 나고야의 수호신으로 불렸던 그이기에 그가 빠찡꼬장에 나타나면 웬만한 손님들은 알아봤지만 일본에선 오락이기에 큰 허물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선동열은 빠찡꼬 징크스가 있었다. 돈을 잃은 다음 날은 펄펄 날지만 돈을 딴 다음 날은 경기가 안 풀리는 것이었다. 잃을 수도, 딸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한화 이종범 코치도 주니치에서 부상을 당해 암울했던 시절 유일한 낙이 빠찡꼬였다고 고백했다.
1920년대 나온 빠찡꼬는 요즘 들어 잭팟 확률은 낮아진 반면 한 번 터지면 연속해서 나오는 연타가 많은 게 특징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꾸준히 조금씩 잃다가 운수대통한 날 한 번에 많이 따게 된다. 이게 빠찡꼬를 끊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선동열이 주니치 입단 2년째인 1997년 첫 20세이브를 거둘 때 취재를 갔던 필자는 실제로 28연타의 짜릿한 손맛을 느껴 보기도 했다. 28박스의 쇠구슬을 뽑는 동안 손목과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랬어도 동행한 기자단의 전체 손익은 마이너스였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야구계의 소문난 타짜들 얘기를, 이번 글에선 한국 선수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빠찡꼬 얘기를 했다. 사실 빠찡꼬만 해도 이것 때문에 패가망신했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다. 일본 정부가 빠찡꼬의 폐해를 알면서도 금지시키지 않는 이유는 엄청난 고용 창출 효과와 전자산업의 성장에 미치는 혁혁한 공로 때문이다.
그러나 도박은 역시 도박이다. 필자는 훌륭한 기량을 갖춘 선수가 도박 때문에 꿈을 접는 안타까운 경우를 지켜보기도 했다. 웬만한 팬이면 이름만 대도 다 아는 모 선수는 한창 전성기에 갑자기 은퇴했다. 당시 동료 선수들이 그에게 빌려준 뒤 떼인 돈도 꽤 됐다고 한다. SK 김태형 코치는 이 친구가 은퇴한 뒤에도 자정을 넘긴 시간에 돈 빌려달라는 전화가 여러 번 왔다고 했다.
요즘 선수들은 여럿이 모여 앉아 하는 도박 대신 혼자서 하는 인터넷 도박을 한다. 몇 년 전 크게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던 불법 인터넷 도박은 동료들끼리 재미삼아 하는 것과는 달리 그 규모가 억대에 이른다. 돈을 빌려주는 전문 브로커까지 있어 어떤 선수는 연봉을 받으면 바로 이들이 채간다고 한다. 심지어는 이제 선수들이 경기 조작에 가담하고 불법 베팅까지 한다고 하니 참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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