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에 내려갔다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그러는 거예요. ‘홍 선수, 사직에서 첫 경기 할 때 고개 바∼짝 숙여 인사해야 할 끼다. 부산을 떠났다고 욕하지는 않지만 그거 하난 꼭 부탁한데이’라고. 그래서 말했죠. 물론이죠. 잠실에서도 롯데 팬들에게 허리 굽혀 인사할 겁니다.”
15일 만난 홍성흔(36)은 여전히 시원시원했다. 최근 4년 동안 입었던 롯데 유니폼도 잘 어울렸지만 1999년 프로 데뷔 후 10년이나 입은 두산 유니폼은 여전히 그와 궁합이 잘 맞아 보였다.
“롯데와의 협상이 결렬된 뒤 두산이 아닌 다른 팀과도 접촉을 했어요. 조건은 그쪽이 더 좋았는데 어차피 팀을 옮긴다면 친정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롯데 구단 관계자들은 홍성흔을 “성적 이외에 플러스알파를 많이 가진 선수”라고 평가한다.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더그아웃 분위기를 주도하는 그의 능력을 높이 산 것. 두산도 다르지 않다.
“(두산) 사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방망이는 기본 실력을 갖췄으니 잘할 것이고 무엇보다 벤치를 뜨끈뜨끈하게 만들어 주기 바란다’고. 네, 하고 대답은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무서운 거예요. ‘기본 실력’을 어느 정도까지 바라시는 건지. 하하.”
‘오버맨’으로 불릴 정도로 거침없는 입담과 화려한 퍼포먼스 등 야구 외적인 면에서 주목을 받아 왔지만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리그 정상급 타자다. 14시즌 통산 타율이 3할(0.303)을 넘고 타점(915개)은 역대 13위다. 그의 윗자리에 은퇴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두산과의 4년 계약 기간에 지난해 타점(74) 정도만 꾸준히 유지한다면 역대 2, 3위까지 뛰어오를 수 있다.
“주위에서 체력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 아직 괜찮습니다. 두산에서 포수를 그만둘 때 아쉬웠는데 돌이켜보니 체력이 떨어질 때쯤 힘든 포지션을 그만둔 게 다행이었어요. 2010년에 타율 0.350, 26홈런, 116타점을 기록했는데 두산에서 그 기록을 넘고 싶어요. 그래야 두산 팬들도 ‘잘 데려왔다’ 하시지 않겠습니까.”
1999년 신인왕을 차지한 홍성흔은 골든글러브도 6차례(포수 2회, 지명타자 4회)나 품에 안았다. 하지만 아직 최우수선수(MVP)와는 인연이 없다. 그래서 더 간절하다.
“팀 우승과 MVP는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10번 넘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어도 우승은 2001년 딱 한 번이었거든요. MVP는 2010년이 기회였는데 8월에 다쳐 한 달 동안 출전하지 못하는 바람에 무척 아쉬웠죠.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다고 믿어요. 남은 선수 생활 동안 꼭 정점을 찍고 싶습니다. 시즌이 끝난 뒤 홍보팀 직원들이 ‘이리 가라, 저리 가라’며 정신없이 스케줄 잡는 걸 보는 게 소원이에요.”
“캡틴 곰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롯데에서 친정 팀으로 돌아오자마자 주장까지 맡은 홍성흔이 15일 두산 엠블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자유계약선수(FA)로 처음 다른 팀으로 옮겼다 두 번째 FA 자격을 얻어 친정 팀으로 돌아온 선수는 홍성흔이 처음이다. 일단 팀을 옮기게 되면 구단과 선수 모두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홍성흔의 복귀는 그의 원만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혹시 두산이 우승 전력이라고 생각해 돌아온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많은 선수들이 우승 반지를 끼기 위해 옮긴다는 얘기를 하는데 솔직히 전 그건 아니었어요. 일단 제 가치를 높게 인정해 줬다는 게 먼저죠. 앞으로도 야구를 잘하면 모든 게 잘 풀리겠지만 최악의 경우 제가 벤치에 앉아 있더라도 고참 역할은 충실히 할 겁니다. 팀을 위해, 후배들을 위해 목청껏 파이팅을 외치는 것도 그런 이유죠.”
이적하자마자 주장에 선임된 건 그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그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놀라긴 했지만 걱정은 안 합니다. 선배들이 잘 도와주고 후배들은 잘 따라줄 것이라고 믿으니까요. 주장 잘 뽑았다고 좋아한 동료들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두산 팬 여러분. 올해 팀을 우승시키겠다는 말을 지금 하지는 않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시즌이 끝난 뒤 결과로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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