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성(왼쪽)과 이승준이 15일 강원 원주의 한 음식점에서 서로 팔을 걸고 ‘러브샷’을 하고 있다. 인터뷰 후 오후 훈련이 잡혀 있던 둘은 술 대신 보리차로 잔을 채웠다. 김주성은 “아내가 ‘잘생긴 승준이 형하고는 절대로 사진 같이 찍지 말라’고 했다”면서 잠시 머뭇거렸으나 곧 웃는 얼굴로 팔을 걸었다. 원주=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무슨 말을 해도 변명처럼 되고 마는 그런 시기가 있다. 이럴 땐 입을 다물어야 한다. 억울하고 분해도 참는 게 상책이다. “당신들이 뭘 잘 모르는 것 같은데…” 하면서 콩팔칠팔 떠들어봐야 헛일이다. 꾹 참고 지내면서 말발이 설 날을 기다려야 한다.
김주성과 이승준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동부가 이번 시즌 초반 죽을 쑤며 바닥을 길 때 팀 추락의 원인 제공자로 찍혔던 둘이다. 전력을 차츰 끌어올린 동부는 살아나고 있다. 한때 1할대까지 떨어졌던 승률도 4할대 언저리에 와 있다.
“어떤 얘기를 해도 변명같이 들릴 게 뻔한 상황이었다. 쏟아지는 질타를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성적이 안 좋으면 누군가는 욕을 먹게 돼 있다. 그런 줄 알기에 김주성은 “시즌 초반에 입을 다물고 살았다”며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욕을 먹어도 내가 먹는 게 맞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팀의 중심이고 연봉도 많으니까 비난이 쏠린다고 여겼다. 김주성은 국내 프로농구 최고 연봉자(6억 원)다. 이승준은 5억 원을 받는다. 둘을 합치면 구단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 21억 원의 절반이 넘는다.
욕먹는 분위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참기 힘든 얘기도 있었다. “태업이요? 감독한테 야단 좀 맞았다고 경기 중에 태업을 한다고요?” 지난해 12월 중순 김주성이 태업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농구판에 돌았다. 강동희 동부 감독이 경기 중에 야단친 데 대한 불만으로 태업한다는 얘기였다. “내가 그런 선수였으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도 못했다. 정말 웃기는 얘기다. 사정을 알 만한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해서 마음이 좀 아팠다. 감독님도 어이가 없었던지 웃으면서 ‘너 태업한다는 소문 돌더라’고 하더라.”
이승준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지난 세 시즌을 삼성에서 뛰다 팀을 옮긴 첫 시즌이라 더 그랬다. “지난 시즌에 워낙 잘했던 팀인데 나 때문에 계속 지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이승준은 “나는 수비가 약하다. 동부는 수비가 워낙 센 팀이었다. 어디다 말도 못하고 내가 수비 조직력을 망칠까 봐 걱정이 많았다. 적응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팀 성적이 안 좋을 때는 신문이며 인터넷에 난 기사도 안 보고 지냈다. 부담감과 자책감이 커질 것 같아서다. 이승준은 “그런데도 주변에서 ‘이런 기사가 났다’며 굳이 또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의 이번 시즌 평균 득점은 15점으로 지난 시즌의 16.6점과 별 차이가 없다. 그가 수비를 워낙 잘했던 팀에 왔기 때문에 그의 약한 수비가 도드라져 보여 욕을 많이 먹는 측면도 있다.
시즌 초반 팀이 심하게 부진했던 이유에 대해선 둘 다 생각이 같았다. 손발을 맞춰 가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얘기다. 김주성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나간 선수들이 있고 새로 들어온 선수도 있다. 처음부터 몇 년씩 호흡을 맞춘 것처럼 잘하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라며 “시행착오를 겪은 걸로 본다”고 말했다. 이승준은 “조직력을 갖추는 건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이제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가고 있다. 이기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대로 가면 플레이오프 때도 동부 경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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