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한 OB 모 투수에 무조건 볼 판정 판정 투덜대던 장효조 버릇 내가 고쳐 기록 만들기? 거꾸로 판정으로 한 방
1989년 5월 9일 대전구장. 빙그레 유승안이 만루홈런을 날렸다. 뉴스거리가 되겠지만, 이날 만루홈런은 등급이 달랐다. 홈런을 내준 투수 때문이었다. ‘0점대 방어율 신화’를 만들어가던 해태 선동열이었다. 프로 데뷔 후 첫 번째이자 생애 3개만 허용한 만루홈런 가운데 하나였다. 유승안은 2-0으로 앞선 3회 2사 만루서 선동열의 2구째를 때려 센터 펜스를 넘겼다. 모든 스포츠신문의 1면은 ‘유승안 만루홈런’이 아니라 ‘선동열 만루홈런 허용’이었다. 그 경기의 주심이 이규석이었다. 그 경기를 상기시키자 뜻밖의 말이 나왔다. “선동열의 만루홈런은 내 오심 탓”이라고 털어놓았다.
○이규석이 되돌아본 선동열 만루홈런의 진실
그날 선동열의 컨디션은 엄청 좋았다. 공이 바닥에 쭉 깔려 들어왔다. 그러나 주심 이규석의 눈에는 모두 볼로 보였다. 선동열이 여러 번 머리를 갸우뚱했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었다. 조금 뒤 주자가 모이자 김응룡 감독이 슬슬 걸어 나왔다. 속으로 ‘저 영감 또 난리치겠구나’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김 감독의 말은 달랐다. “이번에는 항의하러 나온 게 아니야. 요즘 무슨 일 있어? 아까 공은 스트라이크야. 오늘 여러 개 놓쳤어”라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아무 일 없이 돌아갔다. 이규석은 속으로 ‘무슨 소리야’라고 되물었다. 그러다 만루홈런이 나왔고, 선동열은 강판됐다. 다음날 빙그레 고원부가 심판실을 지나가다 말을 걸었다. 유창하지 않은 우리말로 “왜 볼 줬어? 어제 다 스트라이크인데…”라고 했다. 그 순간 번개에 맞은 것 같았다. 뒤늦게 경기장면을 반복해서 보며 잘못을 깨달았다. 선동열의 공이 특별히 좋아 낮게 깔리다 솟아오르는데, 제대로 보지 못해 오심을 한 것이었다. 심판은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
○괘씸해서 1회 강판시킨 투수
심판도 사람이다. 감정이 있다. 선수에 대한 호불호를 지니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상황에 따른 순간적 감정에 판정이 좌우되기도 한다. 아날로그 시대에 이규석이 털어놓은 거꾸로 한 판정과 관련된 에피소드다.
OB에 A라는 투수가 있었다. 프로 원년 멤버다. 실업야구에서 한양대로 스카우트해왔지만, 등판 기회가 별로 없었다. 집안 사정도 어려워 졸업반 때 다른 실업팀으로 보내줬다. 본인도 원했다. 한양대를 떠나면서 김동엽(작고) 감독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김 감독이 이규석에게 “걔 어떻게 된 거냐”라고 물었다. 나중에 대회 때 A를 만나서 김 감독의 얘기를 전했다. “시간이 되면 인사라도 하라”고 당부했다. A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내가 왜 가야 해요’라는 표정이었다. 그날 이후 제자로 치지도 않았는데, 프로에 와서 선수와 심판으로 다시 만났다. 사석에서 OB 김성근 감독에게 그 일을 말해줬다. “A만 보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무조건 판정을 거꾸로 할 것이니까, 내가 있을 때는 아예 마운드에 올리지 말라”고 말했다. 어느 날 김성근 감독이 출전선수 명단을 들고 왔다. A가 선발투수였다. 김성근 감독에게 예전에 했던 말을 기억나게 해줬다. 1회부터 거꾸로 판정했다. 던지면 무조건 볼이라고 했다. 김성근 감독은 군말 없이 1회에 투수를 교체했다.
○장효조의 군기를 잡았던 3구 삼진 판정
일본이나 메이저리그에서도 슈퍼스타나 신인들의 군기를 잡는 것은 심판의 몫이다. 감독이나 동료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선수들이 있으면, 감독이 넌지시 와서 “저 선수의 버릇을 좀 고쳐달라”고 한다. 1983년이었다. 한창 잘 치던 삼성 장효조(작고)가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자주 불만을 표시했다. 경고를 보냈다. 3구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마지막 공의 판정에 대해 또 투덜거렸다. 다음 타자가 박찬이었다. 포수의 머리로 오는 공인데도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박찬은 “장효조 때문에 내가 삼진 먹었다”며 불평하고는 돌아갔다. 즉시 삼성 코칭스태프가 뛰어나와 “무조건 우리가 잘못했다. 한 번 봐달라”고 사정했다. 이후 장효조는 심판의 콜에 대해 심한 어필을 자제했다.
○기록 만들기에 거꾸로 판정한 심판
초창기 선수들의 기록 만들어주기가 심했다. 1988년이었다. 시즌 막판 잠실 롯데-MBC전이었다. 주심을 보는데 이상했다. MBC 김상훈이 타석에 들어서면 롯데 내야진이 뒤로 물러섰다. 김상훈은 평소 안하던 번트를 여러 번 대서 1루에 살아나갔다. MBC 투수들도 홍문종에게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않았다. 홍문종은 4구로 나가면 2·3루를 훔쳤다. 두 팀이 짜고 기록 만들어주기를 하는 것이었다. 두 팀 사령탑은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때부터 판정을 거꾸로 했다. 홍문종 타석 때 MBC 투수가 원바운드 볼을 던져도 스트라이크라고 판정했다. 관중도 박수를 쳤다.
심판도 감정이 있는 인간이다. 참으려고 하지만, 그 도를 넘었을 때는 폭발한다. 예전 어느 심판은 관중이 잠실구장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난동을 부리자, 아무도 없는 곳으로 끌고 가 원투 펀치를 먹였다. 그 심판은 결국 징계를 받았다. 심판 이규석도 18년간 2214경기를 판정하는 동안 분노가 폭발한 적이 있다. 그가 기억하는 에피소드다.
○관중에 주먹감자 먹인 심판
1996년 해태-현대의 한국시리즈. 인천 경기였다. 3루심을 보는데, 어느 관중이 처음부터 끝까지 욕을 퍼부었다. 옆의 관중이 말려도 소용 없었다. 참다 참다 5회 끝나고 클리닝타임에 심판실로 돌아가면서 그 관중에게 주먹감자를 먹였다. 요즘 같았으면 크게 난리가 났을 행동이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끝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정말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관중과 ‘맞짱’ 뜬 심판
1990년 전주구장에서다. 어느 관중이 계속 약을 올렸다. 몇 번 눈도 마주쳤다. 화가 나서 손짓을 했다. ‘경기 끝나고 한 판 붙자’는 의미였다. 경기 종료 후 출입구를 빠져나오는데, 그 관중이 쌍방울 최태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심판들과 승용차를 타고 야구장 앞을 빠져나가려는데, 하필 길이 막혔다. 차창 밖으로 그 관중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창문을 열고 불렀다. 그도 한 판 붙자는 자세로 덤벼들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 방으로 쓰러트렸다. 마침 경기장을 빠져 나가던 여러 관중이 그 모습을 목격했다. 심판복도 벗지 않은 상태였다. “심판이 사람을 때렸다”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경찰을 부르자는 말도 나왔다. 쌍방울 구단 직원이 그 광경을 보고 황급히 뛰어와 사태를 무마시키려고 했다. 그 때 쓰러진 관중이 일어서더니 “이규석 심판님, 정말 죄송합니다. 평소 제가 가장 존경하는 심판인데, 오늘 너무 장난을 쳤습니다”라며 먼저 사과했다. 그 바람에 상황은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