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발’ 신태용 전 성남 일화 감독(왼쪽)과 ‘제2의 기성용’을 꿈꾸는 재원 군이 23일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커피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재원 군은 남들보다 늦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에 입문했지만 신 전 감독을 닮아 빼어난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성남=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스타 플레이어 출신 아빠는 아들에게 축구를 하지 말라고 했다. 너무 힘들다고. 하지만 아들은 늘 축구에 목말랐고 친구들과 공을 차며 놀았다. 결국 아빠의 뜻을 꺾고 늦은 나이에 축구화를 신은 아들은 날이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황금발’ 신태용 전 성남 일화 감독(43)과 재원 군(15) 부자(父子). 이른 나이에 K리그 사령탑을 맡아 승승장구하다 ‘날벼락’을 맞은 아빠는 “이 시련이 곧 기회”라며 재도약의 길을 찾고 있고 재원 군은 그런 아빠를 거울삼아 ‘월드 스타’를 꿈꾸고 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성남 사령탑을 그만둔 신 감독과 호주에서 축구 유학 중인 재원 군을 23일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만났다.
○ “아빠를 넘겠다”
아들을 바라보는 신 감독의 표정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극구 만류했지만 정작 아들이 축구를 시작하자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신 감독은 2008년 호주 브리즈번에 자신이 개설한 축구 전문 TY스포츠아카데미에서 재원 군을 키우고 있다. 당초 초등학교 1학년 때 공부로 유학을 보냈는데 “축구선수가 꿈”이란 재원 군의 끝없는 설득에 6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을 차게 했다. 둘째 아들 재혁 군(12·성남 중앙초5)도 공을 차기 시작해 완전한 ‘축구 가족’이 됐다.
K리그 득점왕(1996년) 출신 아빠의 아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녔다. 아빠같이 공격형 미드필더 및 섀도 스트라이커인 재원 군은 축구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2011년 14세 이하 대표팀 상비군에 뽑힐 정도로 괄목상대했다. 지난해 호주에서 233개 팀이 참가해 열린 캉가컵 국제대회에선 존폴칼리지 중학교의 주장으로 출전해 준우승을 이끌었다. 10골 7도움으로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재원 군은 ‘제2의 기성용’을 꿈꾼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축구 유학한 뒤 FC 서울과 스코틀랜드 셀틱을 거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에서 뛰고 있는 기성용은 신 감독과 재원 군 모두가 롤 모델로 삼고 있다. 재원 군은 “축구도 잘하고 잘생긴 성용이 형처럼 국가대표도 되고 유럽 빅리그에도 진출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국가대표 출신에 유일하게 선수로 K리그 3연패를 두 번(1993∼1995년, 2001∼2003년·이상 성남)했고 성남 감독으로 2010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아빠. 부담도 될 터인데 재원 군은 “아빠를 넘어서야 국제무대에서 성공하죠”라며 웃었다. 그런 아들을 보는 아빠의 얼굴엔 더 큰 웃음꽃이 피었다. 신 감독은 “재원아, 축구를 시작한 지 4년이 조금 넘었는데 너무 잘해 고맙다. 하지만 악착같이 달라붙어 공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근성은 더 키워야 한다”며 조언을 잊지 않았다.
○ “내겐 재도약의 기회다”
2008년 말 팀을 맡아 2009년 K리그 준우승, 2010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잠시 주춤(2011년 10위, 2012년 12위)했는데 ‘나가라’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지난해 말 사표를 던졌다. 신 감독은 “처음엔 좀 서운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성남에 너무 고마웠다. 성남이 있었기에 내가 있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가 내겐 보약이 될 것”이라며 이를 악물었다.
2004년 말 성남에서 떠밀리듯 은퇴한 신 감독은 코치 등 지도자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2008년 갑작스레 성남 지휘봉을 맡았다. ‘형님 리더십’과 열정이 조화돼 초반에 좋은 성적을 내며 돌풍을 일으켰지만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었다.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구단 프런트, 선수단이 삼위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신 감독은 “오히려 이런 시련이 너무 고맙다. 언제 배우겠나. 절망이 아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나를 지지해준 팬들을 위해 꼭 멋진 감독으로 그라운드에 다시 서겠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2월 말 스페인으로 유럽축구 유학을 떠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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