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쯔이다!” 중국 최고의 배우인 장쯔이(가운데)가 30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스노슈잉 경기장에서 열린 400m 스노슈잉 계주에 참가해 대나무를 엮어 만든 스노슈를 신고 힘차게 달리고 있다. 이날 이벤트에는 장쯔이를 비롯해 중국의 농구 스타 야오밍, 이봉주 등 국내외 스타들이 참가했다. 평창=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장쯔이다!” 누군가 외치자마자 중국 최고의 여배우는 금세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잠시 후 설원에 등장한 야오밍은 누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그 존재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키 229cm의 ‘걸어 다니는 만리장성’은 농구화 대신 대나무를 엮어 만든 스노슈(설피·雪皮)를 신고 있었다. 한국의 ‘마라톤 영웅’ 이봉주는 알루미늄 스노슈를 신고 눈밭을 누볐다.
30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스노슈잉 경기장은 그야말로 ‘별들의 한마당’이었다. 한자리에서 보기 힘든 이들을 한데 모은 것은 2013 평창 겨울 스페셜올림픽이 공들여 준비한 통합 스포츠 체험 프로그램. 이날부터 폐막일까지 종목을 바꿔가며 전 세계 유명 스타들이 대회에 출전한 지적장애인 선수들과 어울려 경기를 한다. 월드스타와 국내외 올림픽 메달리스트, 스페셜올림픽 관계자와 후원 기업 임원, 국회의원 등이 참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회 첫날 종목이 바로 스노슈잉. 스페셜올림픽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종목은 신발을 신은 채 스노슈를 장착하고 눈 위를 뛰는 경기다. 장비 다루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지적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25m 단거리부터 5km 장거리까지 8개 개인종목과 4×100m, 4×400m 계주 등 총 10개의 세부종목이 있다.
이날의 이벤트는 4×100m 계주로 모두 네 차례 열렸다. 비장애인들이 1, 3번째 주자가 되고 지적장애인 선수들은 2, 4번째 주자로 나섰다. 장쯔이와 이봉주는 첫 번째 경기, 야오밍은 두 번째 경기에 출전했다.
이봉주의 달리기 실력은 눈밭에서도 독보적이었다. 3번 주자로 나선 이봉주는 바통을 잡자마자 쏜살같이 달려 나가며 다른 선수들과의 격차를 벌렸다. 그 덕분에 이봉주가 속한 1조는 여유 있게 우승했다. 이봉주는 “가벼운 마라톤화에 비해 스노슈가 무겁고 불편했다. 지적장애인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동안 관심이 없었던 게 미안하다. 앞으로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재능 기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번째 경기 1번 주자로 나선 야오밍은 민첩했던 농구 코트에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5명 가운데 꼴찌로 자신의 구간을 마친 그는 “따뜻한 중국 남부에서 태어나 눈 위에서는 뛰어본 적이 없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즐겁고 자랑스러운 기억을 갖고 간다”고 말했다. 장쯔이와 야오밍은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SOI)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유명 인사들과 지적장애인 선수들이 한 팀을 이뤄 경기를 하는 모습을 통해 현장을 찾은 모든 이에게 스페셜올림픽 개최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행사”라고 말했다.
▼ “지적장애인들이 꿈 펼치는 세상을 위해” ▼
스페셜올림픽 글로벌서밋 지구촌 지도자 300여명 참석
미얀마의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오른쪽)와 나경원 평창 겨울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장이 30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스노슈잉 경기장을 둘러보고 있다. 평창=변영욱 기자 cut@donga.com“지적장애인들의 얘기를 들은 뒤 ‘내 삶은 그에 비하면 괜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지적장애인들의 유엔총회’인 글로벌개발서밋이 30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아웅산 수치 여사(68)는 “나는 신념에 따라 살았지만 지적장애인들은 그런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그들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얀마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이자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수치 여사는 평창 겨울 스페셜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방한했다.
역대 스페셜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열린 글로벌개발서밋은 지적장애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구체적인 주제를 설정하고 앞으로 열릴 대회에서 이러한 정신을 확대하고 발전시키자는 의미에서 마련됐다. 나경원 대회 조직위원장의 개회사로 시작된 서밋은 김황식 국무총리의 환영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비디오 메시지가 있은 뒤 티머시 슈라이버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SOI) 위원장의 주제 소개와 수치 여사의 기조연설로 이어졌다. 이날 서밋에는 이들 외에도 조이스 반다 말라위 대통령,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부인이자 여성 운동가인 셰리 블레어 여사, 윌프리트 렘케 유엔스포츠개발평화사무국 특별보좌관,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김용환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중국 농구 선수 야오밍 등 국내외 주요 인사 300여 명이 참석했다. 그동안 지적장애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 수치 여사는 “버마(미얀마)는 정치사회적으로 장애를 지니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이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서밋 참석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진 서밋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경청을 통한 변화(Hearing Voices, Making Changes)’라는 제목의 ‘평창 선언’을 채택했다. 평창 선언은 △(지적장애인들의) 독립적인 삶 △지역사회에 통합된 삶 △국제사회 공동체의 이행 촉구 등 11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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