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부터 52세까지 ‘한마음 스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4일 03시 00분


‘플로어하키의 메시’ 권이삭 2013 평창 겨울 스페셜올림픽에 플로어하키 국가대표로 출전한 권이삭이 3일 강원 강릉시 관동대체육관에서 열린 알제리와의 경기 때 퍽을 몰며 패스할 곳을 찾고 있다. 알제리전에서 두 골을 넣고 4-2 승리를 이끈 권이삭은 이번 대회 10경기에서 14골을 몰아치는 득점력을 자랑했다. 강릉=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플로어하키의 메시’ 권이삭 2013 평창 겨울 스페셜올림픽에 플로어하키 국가대표로 출전한 권이삭이 3일 강원 강릉시 관동대체육관에서 열린 알제리와의 경기 때 퍽을 몰며 패스할 곳을 찾고 있다. 알제리전에서 두 골을 넣고 4-2 승리를 이끈 권이삭은 이번 대회 10경기에서 14골을 몰아치는 득점력을 자랑했다. 강릉=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삼촌! 여기, 여기…. 그래 이삭아! 저쪽으로 뚫어.”

감독의 목은 잔뜩 쉬었다. 며칠째 하루 두 경기 이상을 하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이건 무슨 일일까. 감독이 경기장에서 ‘삼촌’을 외치다니.

강원도장애인종합복지관 소속 플로어하키 팀 ‘반비’의 손원우 감독(34)은 2009년 1월에 복지관 체육교사로 부임했다. 미혼인 그는 강릉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했다. 실기에 이론까지 갖췄지만 일찌감치 장애인들을 지도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1등만 강조하는 비장애인 체육계의 풍조가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1년 그리스 여름 스페셜올림픽에 배드민턴 지도자로 참가했던 그는 우연히 플로어하키라는 종목을 알게 됐다. 국내에서는 자료를 구할 수 없어 외국 사이트를 뒤지며 관련 지식을 쌓았다. 그리고 강원도 및 복지관 관계자들을 설득한 끝에 지난해 1월 강원도의 상징인 반달가슴곰 캐릭터 ‘반비’를 이름으로 한 팀을 창단했다. 그는 “예상은 했지만 힘든 일이 많았다. 체육관을 구할 수 없어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연습하는 건 다반사였고, 15인승 차에 코칭스태프와 선수 등 18, 19명이 함께 타고 다녔다. 보호 장구 등 장비는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골리의 경우 보호 장구만 100만∼120만 원으로 고가라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쓰다 버린 것을 주워 사용했다. 이번 대회 장비도 임차한 것”이라고 했다.

플로어하키는 겨울 스페셜올림픽 종목이지만 얼음이 아닌 우레탄 바닥에서 경기를 한다. 선수들도 스케이트화 대신 일반 운동화를 신는다. 얼음을 쉽게 볼 수 없는 나라도 참가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에서다. 3일 열린 한국의 반비 팀과 투르크메니스탄의 경기 모습. 강릉=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플로어하키는 겨울 스페셜올림픽 종목이지만 얼음이 아닌 우레탄 바닥에서 경기를 한다. 선수들도 스케이트화 대신 일반 운동화를 신는다. 얼음을 쉽게 볼 수 없는 나라도 참가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에서다. 3일 열린 한국의 반비 팀과 투르크메니스탄의 경기 모습. 강릉=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나무나 우레탄 바닥에서 열리는 플로어하키는 얼음을 볼 수 없는 나라들도 겨울 스페셜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채택됐다. 지름 20cm에 가운데 구멍이 뚫린 납작한 고무 퍽을 대걸레 자루 같은 스틱으로 몰고 다니며 골을 넣는 방식이다. 한 피리어드는 3분으로 총 9피리어드가 진행된다.

‘반비’ 팀원들은 복지관에서 방과 후 활동으로 운동을 하던 이들이다. 2013 평창 겨울 스페셜올림픽 한국대표팀 최고령 선수인 김재영 씨(52)는 농구를 하다 손 감독의 눈에 띄었다. 바로 손 감독이 ‘삼촌’이라고 부르는 선수다. ‘국가대표’ 아빠를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김 씨의 딸 은미 씨(22)는 “아빠는 지적장애인이지만 내게는 심장 같은 분이다. 그런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메인 공격수로 활약하는 권이삭(16)은 165cm의 작은 체구지만 ‘플로어하키의 메시’라고 불릴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 권이삭은 조 편성을 위한 예선 6경기에서 8골, 풀 리그로 진행된 7조 4경기에서 6골 등 총 10경기에서 14골을 넣는 발군의 득점력을 과시했다. 손 감독의 애제자인 이진배(22)는 주장으로서 팀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손 감독은 “이 친구(이진배)를 통해 지적장애인도 직업으로서 스포츠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대회 정식 종목 가운데 유일한 구기 종목인 플로어하키는 경기 방식이 간단해 처음 보는 관객들도 금세 몰입할 수 있다. 과감한 돌파와 슈팅, 그리고 격렬한 몸싸움은 선수들이 지적장애인이라는 것을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3일 강원 강릉시 관동대체육관. ‘반비’는 알제리를 4-2로 꺾고 7조 5개 팀 가운데 2위로 조별리그를 마쳤다. 4일 순위 결정전에서 예선 3위 알제리를 이기면 은메달을 확보한다. 스페셜올림픽은 같은 종목이라도 비슷한 수준의 팀(또는 개인)으로 조를 나눠 각각의 조에 속한 팀끼리 메달 색깔을 다툰다.

누가 쫓아내지 않는 이상 가족과 같은 선수들과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다는 손 감독은 “지적장애인들은 기다려만 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다만 그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가끔 선수들을 데리고 영월의 부모님 집을 찾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착한 친구들’이라며 감탄하신다. 나도 사람이다 보니 안 좋은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이 친구들 보면서 마음을 바로잡는다. 지금까지 너무 잘해 줬다. 삼촌, 이삭이, 진배뿐 아니라 선수 15명이 모두 베스트다. 금메달을 목표로 어려운 훈련을 견뎌낸 만큼 꼭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관동대체육관에는 ‘체조의 신’ 양학선, 미국프로농구 스타 출신의 디켐베 무톰보, 나경원 대회 조직위원장이 등이 ‘통합스포츠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된 플로어하키 경기에 지적장애인 선수들과 함께 출전해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강릉=이승건 기자 why@donga.com
#플로어하키#스폐셜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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