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 말하면 차분하고 나쁘게 말하면 소심하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의 평이다. 그만큼 그녀는 내성적이다. 인터뷰 내내 조곤조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것만 봐도 여느 농구선수와 같지 않다. 정규리그 우승을 눈앞에 둔 우리은행의 주장 임영희(33)다.
18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우리은행 연습체육관에서 만난 임영희의 얼굴에는 전날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어제도 플레이가 소심하다고 감독님께 많이 혼났어요.” 우리은행은 17일 하나외환에 56-62로 져 정규리그 우승 축포를 터뜨리지 못했다. 경기가 끝난 뒤 임영희는 혼쭐났다고 했다. 5득점에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차분했다. 농구선수로 걸어 온 그의 길이 만든 성격이다. 벌써 15년차 베테랑. 1999년 신세계에 입단해 10년 동안 주로 식스맨 역할을 했다. “중고등학교 동창인 신정자가 부러웠어요. 정자는 어느새 스타플레이어가 됐는데 저는 벤치에서 매년 똑같은 시즌을 보내고 있었거든요. 그때 우리은행이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농구를 그만뒀을지도 모릅니다.” 임영희는 2009년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었지만 우리은행은 2011∼2012시즌까지 꼴찌를 면치 못했다.
3년 만에 임영희는 위 감독이 가장 믿는 선수로 성장했다. 맏언니 임영희의 시간은 거꾸로 가는 듯했다. 임영희는 올 시즌 경기당 평균 37분 42초를 뛰었다. 풀타임(40분)에 가까운 출장 시간은 우리은행 선수 가운데 최장이다. 2010∼2011시즌 한 자릿수에 머물렀던 평균 득점도 지난 시즌에 14.45점(8위)으로 뛰었고, 올 시즌엔 15.64점(5위)까지 치솟았다.
“올 시즌에 처음으로 라운드 최우수선수(MVP)상을 받았어요. 남들은 한 번씩 받아 본 걸 서른 살이 넘어서 받으니까 좋기보다는 부끄럽더라고요. 특히 지난해 12월에 3점 슛 200개를 돌파했다고 상을 받을 땐 감독님이 그걸 이제 받느냐고 하셔서 진짜 부끄러웠어요.”
임영희의 올 시즌 3점 슛 성공률은 39%로 리그 1위다. 136개를 던져 53개를 넣었다. 위 감독은 “영희의 침착한 면 때문에 성공률이 높다”라고 했지만 임영희는 “지난해에 비해 많긴 하지만 3점 슛을 많이 시도하는 편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보다 높게 나왔다”라고 겸손해 했다. 위 감독은 “충분히 쏠 수 있는 상황에서 머뭇거리는 것만 고치면 더 많은 득점을 올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임영희는 5년 연애 끝에 지난해 4월 결혼에 골인했다. 코트에서도 우리은행과의 4년 연애 끝에 정규리그 우승을 눈앞에 뒀다. 과정은 신중했지만 결정은 대범했던 결혼처럼 임영희는 남은 2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6라운드 신한은행과의 첫 경기에서 승리하고 나서 매직넘버 ‘5’란 숫자가 덜컥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그 후 2승 5패로 하락세였죠. 소심한 저도 후배들과 함께 조바심을 떨쳐낼 겁니다. 우승한 뒤에 선수들과 약속한 대로 어깨동무하고 코트 위를 빙글빙글 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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