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도류에서 전지훈련 중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는 국내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있다. 야수 중에는 정교함을 갖춘 타자와 장타력을 자랑하는 타자, 기동력이 남다른 선수, 수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전문가들이 두루 포진해 있다. 마운드도 마찬가지다. 선발과 중간, 마무리 등 각 분야에서 최고수들만 모였다.
여기에 또 한명의 독특한 고수가 숨어있다. ‘일본 현미경 야구’도 꿰뚫을 수 있는 ‘독수리의 눈’을 가진 비밀병기, 바로 이진영(33·LG)이다.
이진영은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눈을 지니고 있다. 전력분석팀도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투수들의 습관을 타석에서 기막히게 읽어낸다. 투수가 직구와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을 각각 던질 때는 미세한 동작의 차이가 발생하게 마련인데, 이를 놓치지 않는다.
대표팀 선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야구가 9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했을 때, 이진영의 눈은 큰 몫을 했다. 당시 일본 최고의 마무리투수 이와세 히토키는 한국 타자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무적의 포크볼로 메이저리그에까지 진출한 후지카와 규지도 한국 타자들 앞에선 고개를 숙였다.
당시 대표팀 타자들은 한마음으로 이진영에게 고마워했다. 이진영은 직구와 변화구를 던질 때 순간적으로 나타난 작은 동작의 차이를 정확히 잡아내 동료들에게 전했고, 타자들은 타석에서 자신감을 갖고 일본 최고의 마무리투수들을 상대했던 것이었다.
22일 대만 도류구장에서 이 사실이 화제에 오르자 이진영은 “물론 알고 있다고 해서 모두 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참고가 될 뿐”이라며 겸손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그는 ‘일본 현미경 야구’도 잘 캐치하지 못하는 일본 정상급 투수들의 투구 습관을 어떻게 잡아냈을까. 알고 보니 타고난 눈썰미와 함께 일본프로야구 특유의 문화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진영은 “일본 선수들에게 물어봤는데, 리그에서 습관을 잡아내도 자기만 알고 활용할 뿐 같은 팀 동료들에게도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일본 투수들은 (리그에서뿐 아니라 국제대회에 나와서도) 자신의 습관이 노출된 것을 모르고 계속 던진다”고 말했다. 빼어난 눈썰미를 지닌 이진영은 이 같은 틈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 일본전에서 전력분석원 못지않게 톡톡히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진영은 국가대표 터줏대감이다. 2006년 제1회 WBC에서 ‘국민 우익수’로 자리 잡은 뒤 이번까지 WBC 전 대회에 출전하는 베테랑이다. 기량도 빼어나지만 대표팀의 ‘은밀한 레이더’인 이진영의 눈이 이번 WBC에서도 요긴하게 활용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