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기 용인시 KCC체육관에서 만난 허재 감독은 “농구 인기가 떨어진 건 기술자(테크니션)가 없기때문”이라며 “기술 좋은 선수가 안 나오는 건 죽기 살기로 하는 근성 있는 선수가 드물기 때문이다”고 했다. 용인=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허재와 꼴찌.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선수 시절 한국 농구를 쥐고 흔들었던 그다. 마음만 먹으면 코트 안에선 안 되는 게 없던 ‘농구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감독이 되고 보니 이번 시즌 같은 때도 있다. 마음대로 안 된다.
허재 감독이 지휘하는 KCC는 시즌 막바지인 22일 현재 11승 33패로 10개 팀 중 최하위다. 2년 차 감독이던 2006∼2007 시즌에도 꼴찌를 한 적이 있지만 이번엔 사정이 더 안 좋다. 그때는 4라운드 들어 붙박이 꼴찌로 떨어졌지만 이번 시즌엔 1라운드부터 내내 꼴찌다. 예상됐던 일이다. 그래서 KCC의 성적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하승진이 공익근무로 전력에서 빠졌다. 팀의 정신적 지주이던 추승균(KCC 코치)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은퇴했다. 전태풍은 오리온스로 팀을 옮겼고 강병현도 군 복무를 마치고 1일에야 복귀했다.
허 감독은 “시즌 도중 전자랜드에서 영입한 이한권마저 부상으로 다섯 경기만 뛰고 전력에서 빠졌다. 선수를 교체하려고 벤치 쪽으로 돌아보니 코치 셋하고 트레이너 얼굴만 눈에 들어올 때도 있었다. 부상 선수가 워낙 많아 바꿔 줄 선수가 없더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은 10경기에서 최소 4승을 챙겨 15승 이상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치는 게 목표다. 최근 10경기에선 5승 5패로 선전했다. “성적이 안 좋은 팀일수록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안 그러면 선수들이 ‘다음 시즌에도 힘들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해도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걸로 끝이다.” 20일 동부에 패한 뒤 밤 12시 넘어서까지 야간훈련을 시킨 것도 마무리를 잘하겠다고 작심했기 때문이다. “2005년에 감독이 되고 나서 경기 끝난 뒤 야간훈련을 시킨 건 처음이다. 졌다고 그런 게 아니다. 이번 시즌에 한두 번 진 것도 아니고…. 경기 중에 선수들끼리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걸 그냥 두면 팀이 망가진다.” 이날 이후로 허 감독은 ‘밥자리 열외’를 없애버렸다. 먹든 안 먹든 하루 세 끼 식사 때마다 선수들이 다 모이게 했다. 빨리 먹어도 먼저 일어설 수도 없게 했다. 그는 “잘났든 못났든 모두 한 팀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남 탓하는 꼴은 내가 못 봐준다”고 했다.
내년이면 어느덧 10년 차 감독이 되는 그는 선수로 지도자로 모두 성공한 농구인이다. 감독 데뷔 후 우승 두 번에, 준우승 한 번을 차지하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선수 시절부터 불같은 성격에 평생을 ‘갑’으로 살 것 같던 그가 다소 예상 밖의 얘기를 했다. 그는 인터뷰 끝 무렵에 “이제는 선수들한테 맞춰가면서 팀을 끌고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선수들과의 대화도 코치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도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50세다. “농구인들 사이에 ‘허재도 이제 성질 많이 죽었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런 거냐”고 물었더니 “허허허” 웃기만 했다.
그는 “요즘 신인들은 내가 처음 감독됐을 때 뽑은 신인들과 거의 10년 차이가 난다. 개인주의 성향이 많이 강해졌다. 예전처럼 무조건 감독한테 맞추라고 하기는 힘든 환경인 것 같다”며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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