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홀의 선물? 짐싸던 박인비 멋쩍은 역전 우승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5일 03시 00분


LPGA투어 혼다 타일랜드
2타 뒤진채 먼저 경기끝낸 박인비… 클럽하우스 TV로 챔피언조 지켜봐
18번홀 보기만 해도 우승 쭈따누간, 트리플보기 대참사로 자멸의 눈물

“골프는 장갑 벗을 때까지 몰라요.”

프로골퍼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 말이 24일 태국 촌부리 시암 골프장(파72·6469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혼다 타일랜드 마지막 날 최종 라운드에서 현실이 됐다. 비극의 주인공은 태국의 신예 아리야 쭈따누간(18), 반대로 행운의 여신이 웃음을 지은 선수는 박인비(25)였다.

3라운드까지 4타 뒤진 공동 5위로 이날 라운드를 시작한 박인비는 5언더파 67타를 치며 최종 합계 12언더파 276타로 먼저 경기를 마쳤다. 박인비는 장갑을 벗고 클럽하우스에서 챔피언 조의 경기를 TV로 지켜보고 있었다.

쭈따누간이 18번홀에 들어설 때까지 박인비의 우승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12번홀(파3·161야드)에서 행운의 홀인원을 기록하며 단독 선두로 나선 쭈따누간은 13번홀에서도 버디를 잡아내며 박인비에게 2타 앞서고 있었다. 마지막 홀에서 보기만 해도 우승이었다. 수천 명의 태국 갤러리들은 홈그라운드에서 자국 선수의 LPGA투어 첫 우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파5인 이 홀에서 쭈따누간이 세컨드샷 때 우드를 잡은 게 패착이었다. 우드로 친 두 번째 샷은 낮게 깔려 날아가더니 그린 오른쪽 벙커에 들어갔다. 게다가 공은 벙커의 모래와 잔디 사이에 단단히 박혀 정상적인 샷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쭈따누간은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한 뒤 1벌 타를 받고 벙커에서 4번째 샷을 했다. 그런데 이 샷이 그린을 훌쩍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우승에 대한 압박감을 이겨내기에 쭈따누간은 경험이 부족했다. 에이프런에서 퍼터를 꺼내든 쭈따누간의 5번째 샷은 너무 짧아 그린에 올라가지도 못했고, 결국 6번째 샷 만에 공을 홀 1m 남짓한 거리에 붙일 수 있었다. 이 퍼트를 성공해야 연장전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한 번 무너져 버린 멘털은 회복되지 않았다. 짧은 거리의 이 퍼팅은 홀을 돌아 나왔고 결국 8번째 샷에 홀 아웃을 할 수 있었다. 악몽 같은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 트리플 보기였다. 쭈따누간은 믿기 힘든 대역전패에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야 했다.

지난해 LPGA투어 상금왕인 박인비는 “전혀 우승할 것이라 기대하지 못했다. 쭈따누간에게 좋은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시즌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해 기분이 좋고 남은 경기에서 자신감이 더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우승 상금은 22만5000달러(약 2억4000만 원).

박인비의 우승으로 한국 낭자들은 지난주 개막전인 호주여자오픈에서 신지애(25·미래에셋)가 우승한 데 이어 개막 후 두 대회를 휩쓸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박인비#혼다 타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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