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 스피돔 경륜경기장 제1경주. 선두유도원이 주로에서 나가자 종소리가 벨로드롬을 울린다. 결승선까지 한바퀴 반 남았다는 신호. 이때부터 본격적인 순위경쟁이 시작된다.
직선코스에 들어서면서 한 선수가 맹렬하게 페달을 밟으며 추입에 나선다. 술렁이는 관중석, 함성이 터져 나온다. 스피드가 오를수록 상체는 격렬하게 흔들리고 얼굴은 일그러진다. 서서히 떨어지는 하체 근력을 유지하려는 필사의 노력이다.
하나, 둘 그의 뒤로 경쟁자들이 처지고, 마침내 결승선 1m를 남기고는 그의 앞에 아무도 없다. 극적인 역전 우승. 스피돔의 팬들은 기립 박수로 승리를 축하한다.
자전거에서 내려 잠시 숨을 고른 우승자는 싸이의 ‘말춤 세리머니’로 환호에 보답한다. 얼굴에는 굵은 주름이 눈에 띄고, 헬멧을 벗은 머리에는 희끗희끗 흰 서리가 내려 앉았다. 그는 52세로 경륜 최고령 현역 선수인 민인기(2기·선발)다.
○평소 후배들 롤모델…트랙선 격렬한 몸싸움 ‘투사’
1일 광명 8회차 경주서 최고 스타는 누가 뭐래도 민인기였다. 조카뻘인 선수들과 경쟁해서 이룬 1착.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만에 맛본 우승의 달콤함이다. 이날 승부를 겨룬 경쟁자들은 민인기와 적게는 세 살에서 많게는 스무 살 차이가 났다.
민인기는 후배와 경륜전문가들에게 ‘민지도자님’으로 불린다. 성실한 훈련 자세가 후배들의 모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주로 출발선에 서면 그는 ‘트랙의 투사’로 돌변한다. 낙차와 실격을 겁내지 않는 저돌적인 몸싸움, 강한 승부욕으로 팬들의 인기가 높다.
“민인기처럼 자전거를 타면 베팅이 빗나가도 돈이 아깝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 경륜선수들이 꿈꾸는 ‘모범선수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퇴물 소리 듣지 않으려 하루도 운동 쉰 적 없어”
민인기는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려면 훈련밖에 없는 것 같다. 사실 몇 해 전부터 체력 부담을 느끼고 있다. 퇴물 소리를 듣지 않으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운동을 쉬지 않았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항상 훈련에 함께하며 격려해 준 코치이자 후원자인 아내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민인기 선수를 1995년 데뷔 때부터 지켜본 박정우 경륜위너스 예상부장은 “그는 경륜 선수의 교과서다. 반짝 성적을 내고 수입이 늘면 금방 나태해지는 선수들은 쉰 살을 넘겨서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경륜 ‘맏형’의 롱런 비결을 배워야한다” 고 강조했다.
민인기는 2일 경주에서도 2착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아쉽게도 3일 선발급 결승에서는 최하위인 7착을 했다. 하지만 팬들은 벨로드롬을 빠져나가는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쉰 살을 넘긴 노장의 투혼은 순위와 상관없이 벅찬 감동을 전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