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기점으로 국민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등 잇달아 쾌거를 달성하며 그 동력으로 700만 관중시대를 열었다. 2008년 3월 24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스포츠동아는 창간 첫 해부터 베이징올림픽을 시작으로 한국야구가 국제대회에서 써내려온 ‘기적’의 순간을 빠짐없이 기록해나가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9전전승 金 쾌거 준결승 이승엽 역전2점포 후 눈물 감격
2009년 김인식호 ‘위대한 도전’ 승승장구 야구변방 인식깨고 美日과 어깨 나란히 호화멤버 출격 광저우亞게임 퍼펙트 金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한국은 2008년 8월 8일부터 24일까지 17일간 열린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로 일본(금9·은6·동10)을 제치고 종합 7위를 차지했다. 가장 큰 이변은 야구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일이었다.
단순한 금메달이 아니다. 김경문 대표팀 감독이 이끈 한국야구대표팀은 9전승으로 퍼펙트 우승을 거머쥐었다. 쉬운 경기는 하나도 없었다. 예선리그 첫 경기 미국전에선 7-7에서 끝내기희생플라이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고, 상대적으로 낙승이 예상됐던 중국전에서도 승부치기로 진행된 연장 11회 무사만루서 이승엽의 끝내기 좌전적시타로 어렵게 이겼다. 3차전인 캐나다전은 대한민국 에이스 류현진의 9이닝 5안타 6탈삼진 무실점에 힘입어 1-0, 진땀승을 거머쥐었다. 다음은 운명의 일본전이었다. 한국은 6회 2점을 먼저 내주며 끌려갔다. 그러나 7회 이대호의 동점 2점홈런이 터졌고, 김 감독이 9회 2사 1·2루서 좌완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좌타자 김현수를 대타로 내세우는 용병술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대만과의 5차전 역시 1회 7점을 먼저 뽑아 콜드게임 승리까지 노렸지만 6회 8-8 동점을 허용하며 무너질 뻔했다. 7회 한 점을 뽑아 간신히 1점차로 이겼다. 대만과의 혈투로 전열을 재정비한 한국은 쿠바와의 6차전에서도 선발 송승준(롯데)의 6.1이닝 역투에 힘입어 7-4로 이겼다. 마지막 상대 네덜란드에만 유일하게 낙승(10-0·8회 콜드게임)을 챙겼다.
예선전을 다 이겼지만 준결승에서 떨어지면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 게다가 상대는 또 일본. 그러나 한국에는 ‘국민타자’ 이승엽이 있었다. 그는 예선 7경기에서 타율 0.136(22타수 3안타)으로 부진했지만, 김 감독은 “중요할 때 한번만 쳐주면 된다”며 끝까지 4번타자로 중용했다. 이승엽은 김 감독의 믿음에 화답했다. 2-2로 맞선 운명의 8회 1사 1루서 이승엽은 역전 2점홈런을 때려내며 결승행 티켓을 동료들에게 안겼다.
쿠바와의 결승전. 대표팀은 상대 선수뿐 아니라 심판과도 싸워야 했다. 3-2로 앞선 9회 선발 류현진이 여전히 마운드를 지켰지만 1사 2루서 구심의 석연찮은 판정으로 순식간에 1사 만루 위기에 봉착했다. 설상가상으로 심판에게 가볍게 어필했던 포수 강민호까지 퇴장을 당했다. 그러나 허벅지가 아파 주로 벤치를 지켜온 진갑용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마스크를 썼고, 정대현이 마운드를 이어 받았다. 상대 타자는 쿠바의 최고 타자 율리에스키 구리엘이었지만 정대현은 유격수 앞 병살타를 솎아내며 한국 남자 단체구기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2009년 WBC 준우승
2006년에 이어 2009년 WBC 대표팀 사령탑이 된 김인식 감독은 대회를 앞두고 “위대한 도전”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국은 야구변방국이다. 이웃나라 일본만 봐도 야구 인프라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러나 한국은 야구종주국 미국과 일본 등 강호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위대한 결과’를 얻어냈다.
도전의 길은 험난했다. 대회를 앞두고 감독 선임부터 난항을 겪었고, 부상으로 선수들이 이탈했다. 어수선했던 대표팀을 한데 모은 것은 태극마크였다. 두 번째 경기였던 일본전에서 충격의 콜드게임 패배(2-14)를 당했지만 중국과의 3차전에서 14-0, 콜드게임 승리를 거뒀고, 다시 일본과의 1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봉의사’ 봉중근의 깜짝 호투에 힘입어 1-0의 짜릿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후 거칠 것이 없었다. 2라운드 1차전에서 멕시코를 8-2로 누른 데 이어 다시 만난 일본에 4-1로 또 이겼고, 4강전에서도 메이저리거들이 즐비한 베네수엘라를 10-2로 완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결승전, 이 대회에서 5번이나 일본과 만난 대표팀은 많이 지쳐있었다. 2-3으로 뒤진 9회 터진 이범호의 동점타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뒷심을 발휘했지만, 연장 10회 추가 실점하며 우승컵을 내줬다. 코앞에서 우승컵을 놓쳤지만 한국야구의 발전상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국제대회에서 또 한번 한국야구의 저력을 과시했다. 조범현 감독이 이끈 한국은 예선부터 결승까지 5전승, 퍼펙트 우승을 차지했다. 해외파 추신수, 김태균을 비롯해 2010시즌 타격 7관왕 이대호, ‘절대 에이스’ 류현진 등 베스트 멤버가 꾸려졌다. 김광현이 개인사정으로 대표팀에서 하차했고, SK 소속 선수 4명이 한국·대만클럽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대표팀은 흔들림이 없었다. 대만과의 예선 1차전을 6-1로 이긴 데 이어 홍콩과의 2차전에서도 15-0, 콜드게임 승을 거뒀다. 파키스타과의 3차전도 17-0의 완승. 준결승에서도 양현종의 6이닝 1실점 호투로 중국을 7-1로 따돌렸다. 결승에서 대만과 다시 맞붙은 한국은 좌완 에이스 류현진과 우완 에이스 윤석민이 역투한 덕에 9-3으로 승리해 8년 만에 아시안게임 우승을 되찾았다. 추신수가 5경기에 출장해 14타수 8안타(타율 0.571) 3홈런 11타점의 맹타를 휘둘렀고, 강정호가 필요할 때마다 결정적 홈런을 때려내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3년 한국은 제3회 WBC에서 다시 세계야구의 정상에 도전했다. 비록 1라운드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쓰라린 경험이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예방주사일 수 있다. 창간 5주년을 맞아 한층 발전된 신문을 꾀하고 있는 스포츠동아처럼,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프로야구도 패배의 쓰라린 경험을 밑거름 삼아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힘차게 재도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