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선수가 모자라 단거리 선수들인 이규혁이나 모태범이 ‘대타’로 들어가곤 했었죠.”
한명섭 대한빙상경기연맹 스피드 경기이사의 말처럼 한국 빙상에서 팀 추월(Team Persuit)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팀 추월은 3명씩으로 구성된 두 팀이 한 바퀴 400m인 링크의 양쪽 중앙에서 동시에 출발해 남자는 8바퀴, 여자는 6바퀴를 도는 경기다. 각 팀의 가장 느린 주자의 기록으로 순위를 가린다. 이 종목은 무엇보다 선수들의 고른 기량과 팀워크가 필수적이다.
선수 수가 부족한 한국은 지난해에야 처음으로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팀 추월에 대표팀을 내보냈다. 그 대회에서 남자 대표팀은 8개 팀 중 7위, 여자 대표팀은 8개 팀 중 6위를 했다.
그랬던 한국 팀 추월 대표팀이 24일 러시아 소치에서 끝난 올해 종별 세계선수권에서 1년 만에 기적 같은 반전을 이뤄냈다. 이승훈(대한항공)-김철민-주형준(이상 한국체대)으로 구성된 남자 팀 추월 대표팀은 3분44초59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네덜란드(3분42초03)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이에 앞서 열린 여자 팀 추월에서는 김보름(한국체대)-노선영(용인시청)-박도영(한국체대)이 3분05초32의 기록으로 네덜란드(3분00초02), 폴란드(3분04초91)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올림픽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종별 세계선수권 팀 추월에서 아시아 국가가 은메달을 따낸 것은 남녀부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남자부에서는 아시아에서 메달조차 나온 일이 없다.
한국 팀 추월의 급격한 성장에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남자 1만 m 금메달리스트 이승훈의 존재가 있었다. 이승훈이 메달을 딴 뒤 예전에 비해 중·장거리 선수 층이 많이 두꺼워졌기 때문이다. 한 이사는 “김철민과 주형준, 고병욱 등은 상위권 클래스는 아니지만 중·장거리에서 안정적인 경기를 펼칠 수 있는 선수다. 이런 선수들의 성장이 이번 대회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서정수(단국대)가 37년 만에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등 어린 선수들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밴쿠버 올림픽은 쇼트트랙에 편중되어 있던 한국의 메달밭이 피겨와 스피드스케이팅으로 확대된 대회였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소치 올림픽에서 팀 추월이 새로운 효자 종목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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