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감독은 3종류로 나뉜다. 경기를 앞두고 준비를 철저히 하는 감독, 경기 도중 놀라운 전술과 상황대처 능력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감독, 경기 뒤 신상필벌을 잘해서 선수들의 신망을 받는 감독 등이다. 명장(名將)이라면 이 3가지를 모두 갖춰야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느 하나도 제대로 갖추기 힘들다. 감독은 많지만 좋은 감독을 찾기 힘든 이유다.
신치용 감독에게 물었다. “3개의 감독스타일 가운데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가.”
신 감독의 답은 첫 번째였다.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경기를 잘 할 수도 좋은 결과를 만들 수도 없기에 신망을 받기도 어렵다.”
신 감독은 어떤 시즌보다 이번 챔프전을 앞두고 긴장했다. 삼성화재는 몇 년 째 빤히 드러난 전력이었다. 그것도 같은 상대와 3년 연속 치르는 챔프전. 시즌 6차례 대결에서 모두 이겼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힘과 힘이 부딪치는 승부에서 상대는 마음을 비웠다. 져도 부담이 없었다. 감독도 아닌 대행감독과의 경기였다. 전무와 과장의 대결이다. 신 감독은 삼성화재에서 전무급 위치지만 김종민 감독대행은 과장직급이다.
1차전. 승리에 대한 부담을 느낀 선수들은 허둥거렸다. 첫 세트를 내주면서 간신히 이겼다. 경기 뒤 감독은 베테랑 3명을 따로 불렀다. 각자에게 해주고 싶은 뜻을 확실히 알렸다. “어린 선수들이 승리에 도취해 경거망동하지 말게 하고 겸손하게 2차전을 준비하라.” 모든 선수들과 일일이 대화하지 않는 그만의 소통방법이었다.
2차전은 더 고전했다. 경기는 이겼지만 졸전이었다. 선수들도 인정했다. 감독은 “이겨서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베테랑 석진욱이 1세트 도중 상대와 충돌한 뒤 오른 무릎에 통증을 느끼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물망 수비에 구멍이 생긴 이유였다. 우승결정전은 버티기 싸움, 에이스의 대결이라는 지론대로 신 감독은 밀고 나갔다. 그의 판단과 선택은 옳았다. 라커룸에서 감독은 석진욱에게 한 마디를 했다. “선수가 나이 들어서 두 번째 동작을 못하면 배구를 그만둬야 한다.”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몸을 사리지 않고 플레이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선수들을 애정으로 감싸지만 절대로 정을 주지 않는 사람. 사사로운 정이 생기면 은퇴시킬 때 걸림돌이 된다며 절대로 비공식적인 자리를 만들지 않던 감독이었다.
3차전이 벌어지는 28일 오전 신 감독은 선수들에게 전날 여자부 챔프전을 언급했다. 우승을 눈앞에 두고 4세트 24-21에서 한 점을 내지 못해 대역전패를 당한 기업은행이었다. “어제 경기 봤지. 1점이 결국 그렇게 됐다. 우리가 1점 1점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세터 유광우에게는 “이기는 경기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할지 잘 판단해라” 고 지시했다. 감독은 선수들에게 표정을 강조했다. “코트에서는 웃어라. 아프다고 힘들다고 찌푸리면 모두에게 전염된다. 서로 믿고 웃으면서 하라.”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들은 마침내 우승컵을 들었다. 또 한 번의 헹가래. 용인 심성화재 훈련장 벽에는 그동안의 우승을 기념하는 대형 현수막이 14개 있다. 실업배구 시절 8시즌 우승과 V리그 6번 우승의 훈장이다. 이제 현수막이 하나 추가됐다. 또 다른 벽에는 두 개의 사자성어가 있다. 신 감독이 좋아하는 글이다. 겸병필승(謙兵必勝)과 신한불란(信汗不亂). 겸손한 병사는 반드시 이기고 땀을 믿으면 흔들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