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프로골퍼라면 누구나 ‘포피스 폰드(Poppie's pond)’에 뛰어드는 꿈을 꾼다. 박인비(25)도 그랬다. 그는 “프로에 데뷔한 2006년부터 꼭 그 연못에 뛰어들고 싶었다. 오랜 꿈이 오늘 이뤄졌다. 더구나 오늘은 부모님의 결혼 25주년 기념일이다. 원래 찬물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너무 기뻐 물이 차갑다는 것도 못 느꼈다”고 했다.
포피스 폰드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첫 메이저대회인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이 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미션힐스CC의 18번홀 그린을 둘러싼 연못이다. 2008년까지 이 대회 감독관을 맡았던 테리 윌콕스 씨의 애칭인 ‘포피’를 딴 이름이다. ‘챔피언 호수’라고도 불린다. 대회 우승자가 가족이나 캐디와 함께 이 연못에 뛰어드는 건 이 대회의 오랜 전통이다.
8일 이 대회에서 15언더파 273타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하며 ‘호수의 여인’이 된 박인비는 약혼자이자 스윙 코치인 남기협 씨(32), 어릴 적부터 그를 가르쳐온 백종석 코치와 함께 이 연못으로 몸을 날렸다. 여기까지는 이전 대회 챔피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남 코치는 곧바로 연못 밖으로 나오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플라스틱 물병 2개에 소중히 물을 받았다. 여기엔 숨겨진 사연이 있다.
박인비가 전날 3라운드까지 단독 선두를 달리며 우승 가능성이 높아지자 부모인 박건규 씨와 김정자 씨는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와 딸을 응원하려 했다. 급히 비행기표를 구해 한걸음에 공항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출국 직전 박인비와 통화를 한 뒤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박인비는 “아무래도 부모님이 오시면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될 것 같았다. ‘같이 연못에 빠지고 싶다’는 아버지를 말리느라 힘들었다. 그때 오빠(약혼자)가 포피스 폰드의 물을 담아서 드리겠다고 하자 겨우 아버지가 수긍하셨다”고 했다. 박인비는 17일 미국 하와이에서 개막하는 롯데 챔피언십 때 부모님을 만나 물통에 소중히 담은 물을 전달할 예정이다.
우승상금 30만 달러(약 3억4000만 원)를 더한 박인비는 조만간 발표될 세계랭킹에서 2위로 두 계단 뛰어오르게 된다. 벌써 시즌 2승째를 거두며 올 시즌 목표로 잡았던 올해의 선수상에도 한발 더 다가섰다. 박인비는 “한 계단만 더 오르면 세계랭킹 1위가 되는 상황이라 욕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의식하면 부담을 가질 수 있다. 지금처럼 매 대회 최선을 다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좋은 소식은 하나 더 있다. 2011년 8월 약혼한 남 코치와의 결혼이다. 박인비는 “부모님이 농담처럼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면 결혼시켜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오늘 우승으로 결혼 승낙을 받은 셈이다. 날짜는 잡지 않았지만 결혼은 때가 되면 할 생각이다. 서두르진 않겠다”며 웃었다. 그는 “지난해부터 오빠와 함께 다닌 뒤 스윙도 좋아지고 경기도 잘 풀린다. 언제 어느 때건 내 편이 있다는 사실이 힘든 투어 생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며 약혼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유소연(23·하나금융그룹)은 이날 보기 없이 7타를 줄이는 맹타를 휘두르며 박인비에 4타 뒤진 준우승(11언더파 277타)을 차지했다. 한국 낭자들은 지난해 유선영(27·정관장)에 이어 올해 박인비까지 이 대회 2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올 시즌 열린 6개 대회에서 3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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