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수 가운데 피칭 인터벌 가장 빨라 항상 준비된 공…칠 테면 쳐봐라 ‘배짱투’ 투구 밸런스 우선…무브먼트로 타자 제압
프로 24년차 롱런 비결? 한 달은 ‘山사람’ “공격적이지 못할 땐 은퇴…팔꿈치가 걱정”
KIA 최향남(42)은 국내 투수 가운데 피칭 인터벌이 가장 빠른 투수다. 마운드에 서면 공격적 투구로 타자와 승부한다. 그의 직구 스피드는 시속 137km에 불과하지만, 타자들은 시속 145km 이상으로 느낀다. 최향남은 자신의 공에 대한 믿음과 철학을 갖고 있다. 그는 타자를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준비한 최선의 공을 던지며 타자와의 승부를 즐길 뿐이다. 1990년 프로에 데뷔한 그의 24번째 시즌이 시작됐다. 프로야구 투수로 24년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시즌 초반 KIA 불펜에서 그의 존재는 빛난다. 6경기에 등판해 4홀드를 따냈다. 최향남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
○승부는 즐기는 것! 이기려고 하지 마라!
최향남의 피칭은 거침없다. 전광판에 찍힌 스피드는 137km에 불과하지만, 타자들은 그의 공에 쩔쩔맨다. 마치 150km를 던지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마운드에서 최향남의 생각은 단 한가지다. ‘내가 준비한 최선의 공을 던질 테니 한번 쳐봐라!’ 단지 그뿐이다. 피하지도 않고, 피할 생각도 없다. 투수는 열심히 준비한 공을 던지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온 것이 아닌가? 인터벌이 빠른 데도 이유가 있다. 다음 공을 던질 준비가 남들보다 빨리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기려고 하지 마라. 이기려고 하면 불필요한 생각이 많아지고 몸에 힘이 들어간다.’ 승부의 결과를 예상하지 않고 준비한 최선의 공을 던지는 것만 생각한다. 그것이 최향남의 피칭이다.
○피칭은 밸런스다. 스피드건과 싸우지 마라!
최향남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피칭의 밸런스다. 늘 일정한 투구 밸런스로 던질 수 있어야 장수할 수 있다. 밸런스가 좋아야 무브먼트가 살아있는 공을 던질 수 있다. 밸런스는 훈련을 통해 습득할 수 있다. 세게 던지려고 하지마라. 세게 던지려고 하면 힘이 분산되고 밸런스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밸런스만 잡히면 80%의 힘으로 던져도 무브먼트가 살아난다.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 스피드건과 싸우지 말고, 투구 밸런스를 익혀라.
○5년은 더 뛸 것 같은데 팔꿈치가 걱정!
앞으로 5년은 더 뛸 것 같은데 확신하지 못한다. 팔꿈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2011년 롯데에서 그는 팔꿈치 수술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대신 재활을 택했다. 수술이 몸의 체력을 급격히 떨어트리기 때문이다. 2000년 LG에서 어깨 수술을 받고 고생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올 시즌 계약할 때 그의 조건은 ‘1주일에 한두 번만 던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즌 초반 그는 많이 던지고 있다. 팀이 12경기를 치르는 동안 6경기에 등판했고, 10일 광주 두산전에선 2이닝을 던졌다. 승부하는 즐거움은 좋은 일이지만, 항상 팔꿈치가 마음에 걸린다. 아프거나 통증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부상이 재발할까 두려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40세의 몸 관리! 좋은 생활과 꾸준한 긴장감!
40세가 넘으면 후배들보다 더 일찍 몸을 만들어야 한다. 20세 때는 시즌 뒤 한두 달 쉬고 스프링캠프에 참가해도 해낼 수 있다. 30세 때는 12월부터 몸을 만들고, 40세가 넘으면 11월부터 준비해야 한다. 훈련을 많이 하는 것보다 적당한 몸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몸의 컨디션을 나쁘게 하는 사생활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한번 몸의 밸런스가 깨지면 다시 몸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결국 1년 내내 긴장해야만 40세가 넘어서도 버텨낼 수 있다. 최향남은 12월 한 달을 산에서 생활한다. 속세의 유혹을 떨치고 몸을 만들기 위해서다. 2006년부터 벌써 7년째 산사람으로 살았다. 한 달 동안 산에서 지내면 몸과 마음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좋은 것을 찾기보다는 좋지 않은 것을 경계하라!
2006년 트리플A에서 1년 동안 호텔과 야구장만 다녔다. 1년 내내 햄버거와 치킨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도 공을 던질 때는 몸의 컨디션이 좋았다. 왜 그랬을까. 2007년 롯데로 돌아온 뒤 최향남은 똑같이 살아보기로 했다. 야구장과 집만 다녔다. 하루 세끼를 제시간에 먹었고, 훈련 스케줄을 거르지 않고 소화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좋은 것을 많이 먹고 좋은 시간을 많이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좋지 않은 것을 먹지 않고 좋지 않은 시간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느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올해 프로야구에선 볼넷이 많다. 마운드에서 공격적이지 못한 투수들을 보면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러나 기다려야 한다. 몸도 마음도 공격적인 피칭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스스로 노력해야 하고 깨우쳐야 한다. 때로는 코치의 조언이 필요하고 선배의 충고가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KIA 선동열 감독은 젊은 투수들에게 “최향남과 앤서니처럼 공격적인 투수가 돼라”고 이야기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격적인 투수는 기량과 멘탈 모두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KIA의 젊은 투수들은 행복하다. 최향남이라는 훌륭한 멘토가 있지 않은가?
○타자를 이길 수 없다고 느낄 때가 은퇴할 때!
공격적이지 못한 투수는 이미 타자에게 진 것과 같다. 최향남의 철학이다. 그날 컨디션은 초구를 던져보면 안다. 타자의 반응을 느낄 수 있고 여전히 좋은 승부가 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늘 그래왔다. 스피드와 상관없이 아직까지는 무브먼트가 살아있다. 언젠가 마운드에서 자신의 공이 약해졌다고 느끼면, 그때는 은퇴할 생각이다. 아마 그 순간은 공이 약해진 게 아니라 투수로서 몸이 버틸 수 없는 순간일 것이다. KIA 불펜에서 그는 필승조다. 우승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 그는 늘 경기 전에 샤워를 하면서 왼손으로 오른팔을 마사지한다. 그리고 오늘도 좋은 피칭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