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5순위 무명신인에서 SK 4번 우뚝 어릴적 야구선수 꿈 키운 사직구장 첫 원정 “치열한 전쟁터…그래도 여기있어 행복”
기회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한동민(24·SK)은 본인의 표현대로 “주목받지 못한 후순위 신인”이었다. 2012신인드래프트 9라운드 전체 85번. 게다가 그의 포지션은 팀 내서 수준급 선수들이 즐비한 외야수였다. 객관적으로 1군 무대를 당장 노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군대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프로 데뷔 첫 해, 그는 주로 2군에 머물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2012년 9월 미국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참가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150km 이상을 던지는 마이너리그 투수들을 만났어요.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점점 적응이 되더라고요.”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한 그는 결국 SK의 4번타자 자리를 꿰찼다. 23일까지 16경기에서 타율 0.259(58타수 15안타)에 1홈런 11타점을 기록 중이다.
○‘신데렐라’ 설레는 귀향길, 소년의 꿈 현실로!
한동민의 고향은 구도 부산. 야구광인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사직구장을 드나들면서 프로선수의 꿈을 키웠다. 아버지는 엄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부산 대천중학교 시절, 아들이 부진한 날에는 “안타 못 치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러나 한동민이 프로에 진입한 이후에는 누구보다 야구선수 아들의 스트레스를 잘 헤아린다. 13일 마산 NC전 때도 먼발치서 아들을 응원한 뒤 조용히 부산으로 향할 뿐이었다. “경기장 오셨으면 연락이라도 한번 하시지….” “너도 예고 없이 집에 불쑥 찾아오기도 하잖아. 너처럼 한번 해봤다.” 부산사나이들의 무뚝뚝한 대화. 그러나 그 속에는 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부정(父情)이 숨어있다. SK는 23∼25일 올 시즌 첫 부산 원정경기를 치른다. 한동민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바라보던 바로 그곳에 선다. 소년 선수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아버지는 24일에도 사직구장 어딘가에서 아들을 묵묵히 응원할 계획이다.
○‘전쟁터’에서도 행복한 전체 85번의 신인
한동민은 “1군 무대는 매일매일 피가 마른다”고 말했다. 2군에선 타석당 2∼3개의 실투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1군에선 어림없다. “타석당 1개가 들어올까 말까해요.” 공 하나를 놓치면, 그 타석에선 안타를 칠 기회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부단히 자신을 진화시키고 있다. 야구 고민을 하다가 코치에게 문득 모바일 메신저로 질문을 할 정도로 간절하다. 시범경기 직후, 그는 타격폼에 수정을 가했다. “장타가 너무 안나오는 것 같아 눕혔던 배트를 세워봤어요. ‘공을 부숴버리라’는 감독님의 말씀도 떠올리고요. 기왕 타석당 한 번의 기회인데, 배트를 제대로 돌려보지도 못하고 죽으면 억울하잖아요.” 치열한 전쟁터 속에 있지만, 그는 “이곳에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23일 기다렸던 고향 원정경기가 우천 취소된 뒤에도 “내게 단비가 됐으면 좋겠다”며 웃어넘겼다. 4번타자로 기용된 전체 85번의 무명신인. 그가 삶도, 야구도 항상 숫자놀음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까. 한동민은 “삶에서 이런 기회란 쉽게 오는 게 아닌 것 같다”며 실내훈련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