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승락(31)에 대한 넥센 염경엽 감독의 믿음은 한결같았다. ‘마무리투수가 주자를 자주 내 보낸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내가 손승락을 불안해한다면 다른 팀은 어떻겠느냐. 그만한 마무리투수가 또 어디 있느냐”며 반문하곤 했다. 사실이 그렇다. 손승락에게 ‘압도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적은 거의 없지만, 늘 ‘건실한’ 소방수였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 2010년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손승락이 복귀 첫 해 세이브왕에 오른 이후, 넥센은 단 한번도 다음 시즌 마무리투수의 얼굴을 고민해본 적이 없다. 그게 바로 꾸준히 제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내는 손승락의 가치다.
그런 그가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손승락은 30일 대구 삼성전에서 3-1로 앞선 9회 2사 후 마운드에 올라 채태인을 3구 삼진으로 가볍게 돌려세우고, 시즌 10번째 세이브를 따냈다. 본격적으로 뒷문을 지키기 시작한 2010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두 자릿수 세이브. 역대 11번째 기록이다.
이뿐만 아니다. 올 시즌 11번째 등판 만에 10세이브 고지를 밟으면서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소경기 두 자릿수 세이브 기록을 갈아 치웠다. 종전 기록은 12경기. 2003년 현대 조용준, 2006년과 2011년 삼성 오승환, 2012년 두산 스콧 프록터까지 3명이 4차례 달성했던 기록이다. 손승락이 마침내 12경기의 벽을 넘어 기록을 단축시킨 것이다. 경기 전까지 나란히 공동 3위였던 삼성과의 맞대결이었기에 이 세이브의 의미는 더 크다.
아무리 시즌 초반이라 해도 확실히 기분 좋은 스타트다. 일단 첫 9경기에서 연이어 9번의 세이브를 따냈다. 그 사이 팀도 상위권을 질주했다. 유일한 고비는 4월 25일 목동 두산전. 3-3 동점이던 연장 10회 마운드에 올라 기록 달성이 한 경기 뒤로 밀렸고, 설상가상으로 6연승을 마감하는 패전투수가 됐다. 그러나 그는 팀이 4일 휴식을 취하는 동안 몸과 마음을 모두 회복했다.
손승락은 경기 후 “오늘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다”며 쑥스럽게 웃은 뒤 “중간 투수들이 잘 해줘서 편하게 던졌다. 내 앞에 나오는 불펜 투수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새로운 기록의 주인공이라는 사실도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현재 상황에서 세이브의 숫자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다. 팀 승리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 올 때마다 내 역할을 다하고 싶다”고 다짐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