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와 SK가 6일 단행한 2대2 트레이드는 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빅딜’이었다. 무엇보다 2009년 시즌 홈런왕에 등극하며 최우수선수(MVP)까지 차지한 KIA 간판타자 김상현과 선발은 물론 중간과 마무리를 모두 맡을 수 있는 SK 마운드의 기둥 송은범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번 SK와 KIA의 빅딜을 계기로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지금까지 32년간 이뤄진 트레이드의 역사를 살펴본다.
○265건의 트레이드, 557명의 이동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트레이드는 1982년 12월 7일 삼성 서정환의 해태 이적이었다. 배대웅 천보성 오대석 등이 내야에 포진한 삼성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서정환은 삼성 초대 사령탑 서영무 감독에게 줄기차게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결국 해태로 옮길 수 있었다. 선수가 부족했던 해태는 현금(1500만원) 트레이드로 서정환을 영입한 뒤 1983년 주전 유격수로 활용하면서 우승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서정환 트레이드부터 이번 김상현과 송은범이 포함된 KIA-SK의 트레이드까지 프로야구 32년 역사에서 트레이드는 총 265건 성사됐다. 그리고 557명의 선수가 트레이드를 통해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연평균 8.3건의 트레이드가 성사되고, 17.4명이 팀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올 시즌 트레이드는 활발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2월 1일 한화 베테랑 타자 장성호와 롯데 대졸 신인투수 송창현의 맞교환이 승인된 것을 시작으로 5월 초까지 벌써 총 5건의 트레이드가 이뤄져 17명의 선수가 유니폼을 바꿔 입었기 때문이다.
○블록버스터 트레이드
그동안 블록버스터 트레이드가 종종 터져 나와 팬들을 놀라게 했다. 블록버스터 트레이드를 논하자면 1988년 말 삼성과 롯데가 진행한 트레이드가 첫 손에 꼽힌다. 11월 22일 롯데가 최동원 오명록 김성현을 내보내고, 삼성이 김시진 전용권 오대석 허규옥을 내주는 3대4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이 트레이드 소식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팬들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양 팀은 12월 20일 또 한번 초대형 빅딜을 성사시켰다. 롯데는 내야수 김용철과 투수 이문한, 삼성은 외야수 장효조와 투수 장태수를 보내는 2대2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불과 1개월 간격으로 두 팀은 총 11명의 선수를 맞바꿨다. 당시 선수노조 결성과 연봉협상 과정에서 팀과 마찰을 빚은 선수들을 정리하기 위해 이 같은 메가톤급 거래를 텄다.
1993시즌 후 해태 한대화와 LG 김상훈의 맞교환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한대화는 1986년 해태 이적 후 6차례나 팀의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운 ‘해결사’였고, 김상훈은 ‘미스터 LG’라는 애칭을 붙었을 정도로 팀의 얼굴이었다. 12월 4일 발표된 2대2 트레이드에는 해태 좌완투수 신동수와 LG 외야수 이병훈도 포함돼 있었다.
1998년 12월 14일 터진 삼성 양준혁과 해태 임창용의 트레이드 역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당시 번번이 한국시리즈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던 삼성은 마운드 강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임창용을 영입하면서 간판타자 양준혁과 함께 곽채진 황두성을 내주는 3대1 트레이드를 완성했다. 그러자 양준혁은 해외 진출을 선언하며 저항했다. 결국 김응룡 해태 감독이 “1년 후 다른 팀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자 해태 유니폼을 입었지만, 양준혁은 이를 계기로 이후 선수협 결성을 주도하기도 했다.
한꺼번에 8명의 선수가 오간 거래도 있었다. 1986년 10월 13일 롯데는 임호균 배경환 양상문 이진우 김진근을 내주고, 청보에서 정구선 정성만 우경하를 받는 5대3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2001년 12월 20일 삼성과 SK도 8명의 선수를 교환했다. 삼성은 김태한 김상진 이용훈 김동수 정경배 김기태를 내주고, 오상민과 외국인선수 틸슨 브리또를 받는 6대2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눈물의 생존형 트레이드
트레이드는 일반적으로 양 팀이 전력보강을 위해 선수를 교환하는 형태로 이뤄지지만, 때로는 구단의 자금난으로 인해 진행한 사례도 있었다. 1990년대 말 해태와 쌍방울이 대표적이다. 1997년 11월 15일 쌍방울은 현대에 박경완을 넘겨주며 이근엽과 김형남에다 현금 9억원을 받았다. 이듬해인 1998시즌 도중에는 현대에 조규제를 보내면서 박정현 가내영과 함께 6억원을 챙겼다. 그러자 재계 라이벌 삼성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해 12월 25일 쌍방울에서 김기태 김현욱을 받으면서 양용모 이계성에다 현금 20억원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냈다.
2008년 입성한 히어로즈도 한동안 생존을 위해 전력의 핵들을 팔아넘겨 팬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특히 2009년 12월 30일 한꺼번에 3개 팀으로 간판선수들을 보내는 트레이드를 하면서 프로야구에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이택근을 LG로 보내면서 박영복 강병우를 받았고, 삼성에 장원삼을 건네면서 박성훈 김상수를 데려왔다. 이현승을 두산에 주면서 금민철을 얻었다. 히어로즈는 “현금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듬해에도 마일영을 한화로, 황재균과 고원준을 롯데로 보내면서 선수를 받아왔지만 현금이 낀 거래라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런 트레이드도 있었다!
LG는 1992년 2월 11일 최고 스타인 김재박을 공짜로 태평양으로 보냈다. 당시 구단은 은퇴를 종용했지만, 김재박은 26개 남은 300도루와 89개 모자란 1000안타에 미련을 두고 선수생활 연장을 원했다. LG로선 구단의 체면과 선수의 이름값을 살려준다는 명목으로 태평양으로부터 선수는 물론 현금 한 푼 받지 않는 사상 최초의 ‘무상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트레이드를 했지만 선수를 받지 못한 일도 있었다. 삼성과 현대는 1996년 11월 15일 2대1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그러나 삼성의 스타플레이어였던 강기웅은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 뛸 이유가 없다”며 은퇴해버렸다. 이희성과 최광훈을 보낸 현대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장원삼의 사상 최초 트레이드 무산도 잊을 수 없는 해프닝이다. 히어로즈 장원삼은 11월 14일 삼성 박성훈과 1대1 트레이드 소식을 듣고 삼성의 경산 볼파크로 내려가 등번호 13번까지 받았다. 그러나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1월 21일 총재 직권으로 트레이드 승인을 거부해 일주일 만에 다시 히어로즈로 복귀해야만 했다. 삼성에서 차비 명목으로 100만원을 받았다고 말해 화제를 뿌렸다. 장원삼은 결국 1년 후 삼성으로 최종 트레이드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