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스포츠선수에게 군대는 ‘무덤’이라고 여겨진다. 프로야구선수에게도 마찬가지다. 내 자리가 없는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2년여의 공백을 딛고 다시 1군 무대에 서는 일이 쉽기 않기 때문이다. 실력이 최고조로 올라오는 나이에 군대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요즘 프로야구계에는 ‘예비역 돌풍’이 이어지고 있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군 입대를 앞두고 확실한 목표를 세웠고, 복귀 후 ‘더 멀리 뛰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SK 박희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상무에 입단하기 전 무명에 가까웠지만, 상무에 다녀온 뒤 강력한 투심패스트볼(투심)을 앞세워 1군 주축투수가 됐다. 투심을 장착한 이유는 ‘오른손 타자의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구종이 필요하다’는 당시 SK 코칭스태프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도 ‘군대에서 기필코 나만의 결정구를 만들어 돌아온다’며 이를 악물었고, 상무에 들어간 뒤 새 구종을 열심히 연마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땀방울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는 국내 투수들 중에서 손꼽히는 투심을 던지며 국가대표로 성장했다.
두산의 새 마무리로 안착한 오현택과 필승계투 유희관도 ‘군대’를 선수생활의 터닝 포인트로 삼았다. 오현택이 올 시즌 ‘오동열(오현택+선동열)’이라고 불릴 정도로 1군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상무에서 장착한 서클체인지업 덕분이다. 그는 “군대에 가서 싱커나 체인지업 같이 떨어지는 공을 만들어오겠다고 생각했다”며 “2군에선 성적에 상관없이 구종을 시험해볼 수 있기 때문에 마음껏 공을 던지면서 감각을 손에 익혔다. 지금 좌타자를 상대할 때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귀띔했다.
유희관은 살을 뺐다. 그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아무래도 순발력이 떨어지고 체력 부담이 커진다. 군대에 가기 전 제1목표를 체중감량으로 잡았고, 웨이트트레이닝과 러닝으로 8∼9kg을 빼고 체력도 키웠다”고 밝혔다. 지금이야 편하게 말하지만, 사실 ‘제대 후 방출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상무시절 선발로 계속 경기에 나가면서 타자들을 상대하는 요령을 배운 것도 큰 자산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경찰청에서 배터리를 이뤘던 넥센 손승락과 두산 양의지도 전역 후 각 팀의 주축선수로 자리매김했고, 두산 허경민 민병헌과 NC 모창민 등 많은 예비역들이 1군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군대에 간다고 무조건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유희관은 “상무나 경찰청에서도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2년간 쉰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흘려보내면 얻을 게 없고, 하나라도 배우자는 자세로 임해야 얻는 게 있다”고 강조했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요인은 요행이 아닌 노력이다. 예비역들의 이유 있는 반란이 의미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