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해외출장은 대부분 부서 내 순번에 따라 또는 출입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복불복이다. 축구 담당의 출장지는 주로 유럽이나 동아시아, 서아시아(중동), 오세아니아 등인데, 아무래도 축구선진국인 유럽 쪽의 선호도가 높다. 우리가 잘 아는 스타들이 즐비한데다 전 세계 축구문화를 선도하기에 하나라도 더 보고 배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출장 복이 없는 편이다. 2000년대 초중반 중동지역을 안방 드나들 듯 했다. 월드컵 예선, 올림픽 예선, 클럽대항전, 친선대회의 취재를 위해 중동을 자주 찾았다. 안 가본 곳이 거의 없다. 동료들은 ‘중동 전문’이라고 불렀다. 물론 중동축구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출장 빈도 때문이다. 후배들이 출장 갈 때면 길라잡이가 되곤 한다. 건조한 기후여서 물을 많이 마셔야하고, 사탕 등 단맛이 강한 주전부리는 필수이며, 에이컨 사용을 자제해야한다고 조언한다. 돌이켜보면 무더운 기온과 텁텁한 공기, 회색빛 풍광만이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중동원정이 가시밭길인 이유는 기후나 잔디, 시차, 광적인 홈 팬, 텃세, 음식 등 모든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중동 특유의 독특한 리듬 응원도 짜증 유발 요인이다.
한국은 그동안 중동원정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중동원정 A매치(대표팀 간 경기)에서 14승12무12패를 기록했다. 중동팀과의 역대전적인 68승43무33패와는 차이가 많이 난다. 원정에서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한 국가는 이란(2무3패) 이라크(2무1패) 오만(1패) 등이며, 사우디아라비아(2승1무2패) 쿠웨이트(2승2무2패)와는 균형을 이루고 있다.
충격적인 일도 몇 번 겪었다. 대표적인 게 ‘오만쇼크’다. 2003년 10월 아시안컵 예선에서 오만에 1-3으로 졌다. 당시 오만의 국제축구연맹(FIFA)랭킹은 102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에 취해 있던 한국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코엘류 감독은 지도력을 의심받았고, 몇 개월 뒤 월드컵 예선에서 약체인 몰디브와 무승부(0-0)를 기록하면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레바논 쇼크’도 잊을 수 없다. 2011년 11월 브라질월드컵 3차 예선에서 FIFA랭킹 146위의 레바논에 1-2로 패했다. 몇 골 차로 이기느냐에 관심이 쏠렸을 뿐 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경기였다. 당시 패배가 빌미가 돼 조광래 감독은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무자비하게 경질 당했다.
중동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인샬라’다. ‘신이 원한다면’으로 해석되는데, 이슬람교에서는 철칙으로 통한다. 모든 게 신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믿는다. 경기에서 이겨도 인샬라고, 져도 인샬라다. 부상당해도, 골을 넣어도 마찬가지다. 중동축구의 상징인 침대축구(이기고 있을 때 그라운드에 자주 드러누워 시간을 끄는 행위)도 그들 입장에선 인샬라일 것이다. 인샬라 탓에 그동안 한국축구가 ‘쇼크’를 당했는지도 모른다.
27일 소집된 대표팀은 28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 떠난다. 거기서 며칠 간 훈련한 뒤 6월1일 레바논에 입성한다. 6월5일(한국시간) 월드컵 최종예선 6차전 원정경기가 예정돼 있다. 현재 A조 2위인 한국은 레바논을 반드시 꺾어야 본선진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내 경험상 한국이 중동에서 어려움을 겪은 가장 큰 이유는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 실패였다. 낯선 환경에서 컨디션을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대표팀 최강희 감독도 “훈련 때는 물론 쉬는 시간을 활용해 컨디션을 조절해야하는데, 더위 때문에 힘들다. 그렇다고 방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는 것은 더 좋지 않다”고 말했다.
‘레바논쯤이야’ 라며 자만심을 가져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모래바람을 겁낼 필요도 없다. 전력상 한국이 분명 한수 위다. 관건은 태극전사들이 스스로 컨디션을 잘 조절하는 거다. 더 이상의 ‘쇼크’는 없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