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첫해 7개대회 모두 컷탈락 시련의 시작 싼 비행기만 타고 숙박비 없어 무료 숙소 전전 절친 신지애의 도움에 동계훈련땐 더부살이 “험난했던 도전…우승컵 품으니 자꾸 눈물이…”
“맛있는 자장면 사줄게 아빠랑 골프연습장 가자.”
아빠의 달콤한 말 한마디가 평범한 초등학생이던 이일희(25·볼빅)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는 골프선수의 길을 걷게 됐고, 마침내 15년 만에 골프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일희는 27일(한국시간) 바하마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골프장(파72)에서 열린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총상금 130만 달러) 최종일 경기에서 버디만 5개를 잡아내며 합계 11언더파 126타로 우승했다. 2위를 차지한 재미교포 아이린 조(29·9언더파 128타)와는 2타 차다. 이번 대회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골프장의 일부가 잠기는 바람에 사흘 동안 매일 12홀씩 36홀 경기로 치러졌다.
우승상금으로 19만5000달러(약 2억1800만원)를 손에 쥐었다. 그가 지금까지 번 돈 중 가장 크다.
이일희는 ‘세리키즈’다. 1988년생인 그는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던 1998년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그러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또래인 신지애(25·미래에셋), 박인비(25·KB금융그룹), 김하늘(25·KT), 이보미(25·정관장), 최나연(26·SK텔레콤) 등 내로라하는 실력파가 즐비했다.
이일희는 2006년 프로가 됐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3시즌을 뛴 다음 2009년 미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을 거쳐 2010년 미국 무대를 밟게 됐다. 꿈을 안고 미국으로 떠났지만 그의 앞에 놓인 건 우승트로피가 아니었다. 그를 기다린 건 혹독한 시련이었다. LPGA 투어 첫 해 7개 대회에 출전해 모두 컷 탈락했다. 쉽게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고통이 뒤따랐다.
부진한 성적으로 상금을 벌지 못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시작됐다. 2년 간 LPGA 투어에서 뛰면서 번 돈은 약 12만 달러. 먹고 자는 것조차 해결할 수 없는 적은 돈이었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썼다. 싼 비행기를 골라 타고 다녔고, 호텔에서 자는 게 부담스러워 대회장 근처에서 선수들에게 무료로 방을 빌려주는 ‘하우징’을 이용하기도 했다.
동료들의 신세도 많이 졌다. 동계훈련비가 없어 친구들이 훈련하는 곳을 따라가 얹혀 지내기도 했다. 특히 신지애가 많은 도움을 줬다. 미국과 호주 등지에서 함께 훈련하며 이일희의 성공을 후원했다. 둘은 고교시절 함께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활동했다.
힘든 과정을 견뎌낸 뒤 이뤄낸 우승이라 더 값지다.
이일희는 우승 뒤 “골프를 하면서 목표가 큰 무대에서 뛰는 것이었다. 부딪혀보자고 생각하고 미국 투어에 왔는데 이제 우승하고 나니 자꾸 눈물이 난다”며 벅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일희는?
▲1988년 12월 13일생 ▲10살 때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 시작 ▲프로데뷔 2006년(KLPGA) / 2010년(미국 LPGA) ▲2004∼2005년 국가대표 상비군 ▲2007년 KLPGA SK에너지 인비테이셔널 4위 ▲2008년 우리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2위 2009년 롯데마트 여자오픈 2위 ▲2012년 에비앙 마스터스 9위 / US여자오픈 4위 ▲2013년 킹스밀 챔피언십 공동 3위 /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