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출전 성공하면 국내최다 기록
“태릉 생활 23년… 택배도 태릉으로 와
스포트라이트 후배들 차지이지만 부담없이 만족스러운 경기 펼칠것”
23년째 그의 우편물은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으로 향한다. 올해 35세인 그는 13세 때부터 태릉선수촌에서 살았다. 선수촌 곳곳 그가 알지 못하는 곳은 없다. 다른 종목의 코치들이 먼저 인사하기도 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상황이다. 대표팀 22년차 ‘스피드스케이팅의 전설’ 이규혁(35·서울시청)의 선수촌 일상을 들여다봤다.
“매일 아침 6시 졸린 눈을 비비며 스케이트를 타요. 아마 제 나이 또래면 그 시간에 조깅을 하거나 다른 운동을 하겠죠? 이젠 스케이팅이 훈련이 아니라 선수촌 밖 사람들이 하는 조깅처럼 느껴져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선수촌 생활에 “지겹기도 하다”고 말하는 그지만 선수촌 생활 덕분에 지금의 자기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선수촌 밖에서 훈련하고 싶었죠. 하지만 밖에 있는 훈련장에선 10m만 걸어 나가도 온갖 유혹이 펼쳐져요. 그만큼 자제력을 유지하기 힘들죠. 운동밖에 할 게 없는 선수촌에만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제가 태극마크를 달 수 있는 거죠.”
‘올림픽 5수생’인 그는 내년 소치 겨울올림픽에 도전한다. 10월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할 계획이다.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무난하게 대표팀에 승선할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부터 5번이나 내리 올림픽에 출전한 그가 소치 대회에 출전하면 한국 선수 중 올림픽 최다 출전자가 된다. 소감을 묻자 긴 한숨과 함께 쓴웃음을 지었다.
“이전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면 벌써 은퇴하고도 남았겠죠. 5번 나가서 메달 하나 못 딴 사람은 저밖에 없을 거예요. 올림픽 메달이 뭐라고 20년 넘게 스케이트화를 벗지 못하네요.”
매번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지만 동메달도 목에 걸지 못했다. 무관에 그친 2010년 밴쿠버 대회 뒤에는 은퇴도 생각했다. 운동에 대해서는 한 마디 참견도 안 하던 어머니도 그만두라고 얘기했다. 주위에서도 이제 나이를 생각하라고 이야기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선수로 평가받던 그였다. 그러나 이젠 그를 보고 컸던 모태범, 이승훈(이상 대한항공), 이상화(서울시청)에 밀려 존재감마저 희미해졌다.
“이제는 기자회견장에도 잘 안 불러요. 가끔 질문이 들어올 때도 있는데 (이)상화에 대한 질문만 해요. 대회 때마다 제게 집중됐던 관심을 이제 후배들이 받고 있어요. 덕분에 올림픽에서 저의 발목을 잡았던 부담감을 많이 덜었죠. 아마 올림픽에서 제가 메달을 딴다면 이변이겠죠.”
소치 대회에서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자신의 실력만큼 기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밴쿠버 대회 뒤에는 ‘안 되는 목표에 도전한다는 게 슬펐다’고 얘기했어요. 이젠 ‘안 되는 것에 도전해도 실력만큼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5등 정도의 실력이라면 올림픽에서 5등만 해도 돼요. 물론 올림픽에서 메달을 들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꿈꾸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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