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OUT]블록버스터 야구영화보다 2군경기 중계가 더 반갑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4일 03시 00분


황규인 스포츠부 기자
황규인 스포츠부 기자
미국 영화 ‘19번째 남자’(원제 ‘Bull Durham’)에서 크래시는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마이너리그 노장 포수다. 더럼 불스 팀에서 그를 영입한 건 초특급 투수 유망주 에비 때문이었다. 공은 아주 빠르지만 제구력이 엉망이었던 에비에게 ‘코치’를 붙인 것. 에비가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자 팀은 기다렸다는 듯 크래시를 방출한다.

크래시는 마이너리그 감독 제의도 뿌리치고 꿈을 좇아 현역으로 마이너리그 팀을 전전한다. 그 꿈은 바로 마이너리그 최다 홈런(247홈런) 기록을 깨뜨리는 것. 크래시는 결국 247번째 홈런을 치지만 어떤 언론에서도 이를 소개하지 않는다.

미국 일간지 유에스에이투데이는 1988년 6월 15일 개봉한 이 영화를 “마이너리그를 현재 위치로 끌어올린 영화”로 꼽았다. 마이너리그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관중이 많이 찾는 스포츠 리그다. 지난해 마이너리그에 속한 15개 리그 176개 팀 경기를 찾은 관중은 4127만9382명으로 일본 프로야구(2137만226명)의 두 배나 된다. 마이너리그보다 관중이 많은 스포츠 리그는 메이저리그(7186만1768명)뿐이다. 전 세계 모든 리그를 통틀어 그렇다.

‘19번째 남자’가 세상에 나왔을 때 마이너리그 관중은 2160만여 명으로 지금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됐다. 마이너리그 중 하나인 애틀랜틱 리그의 피터 커크 회장은 유에스에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 덕에 훨씬 많은 사람이 마이너리그 팀에도 깊은 애정을 쏟기 시작했다. 마이너리그 팀들도 새 구장을 짓는 등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팬들 기대에 부응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가 미국에서만 5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을 수 있었던 건 메이저리그 스타들의 화려한 삶보다 언젠가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기다리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삶이 대다수 일반인의 삶과 더 닮았기 때문일 터다. 실력이 있다고 모두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운도 필요하다. 이 영화 대사처럼 “누군가가 평생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낼 때 누군가는 일주일에 하나씩 터진 ‘바가지 안타’ 덕택에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는 것”이 우리 삶의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야구하는 고릴라가 컴퓨터그래픽으로 등장하는 영화 ‘미스터 고’ 개봉 소식보다 스포츠 케이블방송사에서 프로야구 2군 경기를 중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더 반갑다. 누군가는 아무도 몰래 프로야구 2군 역대 최다 홈런 기록(몇 개인지 아무도 모른다) 경신에 도전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자들께도 묻는다. 여러분의 247번째 홈런은 무엇인가요?

황규인 스포츠부 기자 kini@donga.com
#야구영화#2군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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