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한 모양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의 이유가 다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진화생물학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라는 저서에서 이 문장을 ‘안나 카레니나 법칙’으로 인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야구단에도 ‘안나 카레니나 법칙’은 어김없이 적용되는데, 잘 나가는 구단이 왜 잘하는지는 딱 떨어지는 설명이 힘들어도, 못 나가는 구단이 왜 못 하는지는 이유를 주렁주렁 댈 수 있다.
이 시점에서 롯데는 참 설명하기 곤혹스런 케이스다. 롯데는 24일까지 33승2무27패를 기록 중이다. 5위지만 1위 삼성과는 불과 3.5경기차다. 5년 연속 4강에 올랐던 관록을 지녔다 하더라도, 지난 겨울 롯데는 2명의 프리에이전트(FA) 김주찬(KIA)과 홍성흔(두산)을 잃었다. 그에 앞서 이대호(오릭스)가 일본으로 갔고, 좌완 에이스 장원준은 경찰청에 입대했다. 우완 에이스 조정훈도 공익근무요원을 거쳐 길고 긴 재활에 매달리느라 전력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개막 직후에는 마무리 정대현까지 극도의 구위 난조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바 있다.
이 전력으로 롯데가 저비용고효율의 성적을 내고 있는 현실을 결과론적으로 설명해보자면, 성공적 세대교체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야수진의 실질적 리더가 강민호, 손아섭, 전준우, 황재균 등 ‘1985년 이후 세대’로 재편됐다. 이 선수들이 팀의 중심으로 성장했고, 똘똘 뭉쳐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롯데 안팎에선 장원준이 군에서 제대하고, 조정훈이 재활을 끝내는 2014년을 우승의 최적기로 보고 있다. 다가올 스토브리그에서 FA 강민호를 잡아야 한다는 단서가 붙지만, 야구계에선 “롯데가 올 겨울 강민호의 잔류에 만족하지 않고, 외부 FA까지 데려올 수 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정훈, 신본기의 성장과 이승화의 재발견 등은 롯데의 2014시즌을 위한 기초체력을 강화하는 좋은 재료다. 김시진 감독과 코칭스태프도 2013년 4강에 근접한 성적으로 명분을 세우고 건실한 세대교체를 이룬 뒤, 2014시즌 우승에 도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 그림이다.
그러나 잘 버티고 있는 지금의 롯데, 우승을 노려볼 만한 내년의 롯데가 어쩌면 소홀히 여기는 포인트가 하나 있다. 바로 베테랑의 처우다. 올 시즌 들어 조성환, 박준서, 이용훈, 김사율 등 롯데 터줏대감들의 입지가 애매모호해졌다. 주전에서 내려왔거나 몸이 완벽하지 못한 형편들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한물간 ‘잊혀진 선수’처럼 취급될 존재는 아닐 터다. 롯데의 명운이 엇갈릴 승부처에서 베테랑들의 존재감은 더욱 빛날 것이다. 대타로서 제몫을 다해주면서 덕아웃에서 가장 먼저 후배들을 응원하는 박준서의 가치가 대표적이다. 영원한 캡틴 조성환과 롯데 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 20세이브를 작성한 김사율, 퍼펙트맨 이용훈 등은 단순히 경기력을 떠나 롯데의 정신적 버팀목이 돼줄 수 있는 이름들이다. 베테랑들이 앞장서서 기적을 쓰고 있는 LG는 롯데에 좋은 참고자료일 것이다. 그리고 현장이 미처 다 챙기지 못하는 베테랑의 예우는 프런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