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수의 시즌 7번째 우승이 확정된 상황에서 ‘여왕’ 박인비(25·KB금융그룹)와 ‘승부사’ 유소연(23·하나금융그룹·사진)이 연장에서 만났다.
둘은 같은 매니지먼트 소속으로 평소 가깝게 지내온 사이. 박인비가 4월 처음으로 세계랭킹 1위로 등극했을 때, 하와이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축하해줬던 주인공이 바로 유소연이다. 그러나 얄궂게도 둘은 연장에서 만났다. 실력으로만 놓고 보면 유소연이 상승세인 박인비를 꺾기엔 역부족인 상황. 단 한 홀에서 승부를 가르는 서든데스 방식의 연장전에선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유소연은 유독 연장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 왔다. ‘연장의 여왕’이라 할 만하다. 유소연은 2009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두산 매치플레이에서 동갑내기 골퍼 최혜용(23·LIG)를 상대로 연장 9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컵을 차지했다. 2011년 US여자오픈에서는 서희경(27·하이트)을 상대로 연장 혈투 끝에 첫 메이저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창과 창이 맞붙은 연장 승부는 의외로 쉽게 끝이 났다. 18번홀(파5) 티잉 그라운드에선 박인비와 유소연은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은 뒤 티샷을 먼저 할 순서를 가렸다. 박인비가 ‘아너’(Honor·골프에서 먼저 티샷하는 선수를 일컫는 용어)가 됐다. 박인비의 티샷이 페어웨이 한 가운데 떨어졌다. 이 모습에 ‘강심장’ 유소연이 흔들렸다. 유소연의 티샷은 왼쪽 러프로 떨어졌다. 좀처럼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온 유소연도 ‘여왕’ 박인비 앞에선 침착함을 잃었다. 이후 상황은 박인비 쪽으로 흘렀다. 박인비는 세 번째 샷을 홀 1m가 조금 넘는 지점에 떨어뜨려 완벽한 버디 기회를 만들었다. 반면, 유소연의 공은 그린 뒤쪽까지 굴러갔다. 유소연은 그린 뒤쪽에서 칩샷으로 버디를 노렸다. 그린에 떨어진 공은 홀을 따라 굴러갔지만 왼쪽으로 살짝 빗겨가고 말았다. 이어 박인비가 버디 퍼트를 시도했다. 홀을 따라 굴러간 공을 왼쪽을 타고 홀을 한바퀴쯤 돌아 안으로 떨어졌다. 그대로 승부가 끝났다.
박인비의 시즌 5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지만, 유소연으로서는 시즌 두 번째 준우승에 만족해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두 번의 준우승 모두 그 상대가 박인비였다. 유소연은 4월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그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도 박인비에 이어 준우승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