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 김기태 감독이 2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김 감독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헌신적인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그동안 믿고 기다려주신 팬들께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지고 있어도 이길 것 같은 팀은 강팀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LG는 항상 반대였다. 이기고 있어도 질 것 같았다. ‘DTD.’ 현대 시절 김재박 감독이 남긴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own Team is Down)”라는 ‘콩글리시’에서 유래한 이 말은 지난 10년간 LG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지난해 LG는 시즌 초반 5할 승률을 유지하며 순항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22일 롯데전 이후 한순간에 꼬꾸라졌다. 이날 LG는 마무리 봉중근이 강민호에게 동점 2점 홈런을 맞은 뒤 역전패했다. 봉중근은 홧김에 오른 주먹으로 소화전을 쳐 골절상을 입었고, LG는 이튿날 또다시 9회 이후 역전패했다. 2012년의 LG는 그렇게 내리막길을 탔고 다시는 올라오지 못했다.
그랬던 LG가 올해 달라졌다. 5월 21일부터 이달 23일까지 28경기에서 21승 7패(승률 0.750)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렸다. 5할 승률에서 ―5까지 내려갔던 승차는 36승 27패로 +9가 됐다. LG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올 시즌 일정의 절반을 소화한 LG 김기태 감독을 25일 잠실구장에서 만났다.
○ 모래알을 신바람으로
LG 선수단은 그동안 모래알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자기만 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지난해 부임했을 때부터 선수들에게 ‘늪 이론’을 이야기했다. LG가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당시에는 9년 연속) 늪에 빠져 있으니 내 탓 네 탓을 하기보다는 일단 늪에서 빠져나오고 보자는 것이었다.
요즘 팀이 잘나가면서 ‘모래알 LG’는 남의 얘기가 됐다. 김 감독은 “요즘 우리 팀은 주전과 비주전을 가리지 않고 자기보다 팀을 위해 헌신하려는 선수들이 넘친다. 지금 분위기라면 예전처럼 위기가 닥쳤을 때 한순간 허물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LG는 지난달 말 임찬규가 수훈선수 인터뷰 중 한 여자 아나운서에게 물을 뿌린 ‘물벼락’ 사건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예전 같으면 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LG 선수단은 오히려 그 사건을 계기로 똘똘 뭉쳐 하나가 됐고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다”
지난해 봉중근 사건이 LG 내리막의 시작이었다면 올해 급상승세의 계기는 지난달 23일 삼성전에서 나온 권용관의 ‘홈 쇄도’다. 1-1 동점이던 6회 초. 3루 주자 권용관은 삼성 포수 이지영이 투수 윤성환에게 공을 느리게 던지는 틈을 타 번개처럼 홈을 파고들었다. 야수선택으로 기록됐지만 팬들은 홈스틸로 받아들였다.
예전의 LG였다면 나올 수 없는 플레이다. 김 감독은 “오랜 기간 4강 진출에 실패하다 보니 선수들 사이에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혹시 나 때문에 지는 거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러다 보니 속칭 ‘안전빵’인 플레이가 나오기 일쑤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권용관의 플레이는 LG 선수단을 감싸고 있던 두려움을 한 방에 날려 버렸다. 최강 삼성을 상대로 홈스틸로 결승점을 올린 것은 농구로 비유하자면 경기 종료 직전 장신 수비수를 앞에 두고 호쾌한 덩크슛을 꽂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항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문해 왔다. 고비를 넘으려면 과감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팀이 우리를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용관이의 플레이를 통해 우리의 팀 컬러가 한층 강해졌다”고 말했다.
○ 더 높이 보고, 더 큰 꿈을 꾼다
올해 LG는 어딜 봐도 되는 집안이다. 한때 유망주의 무덤이라 불렸지만 올해는 문선재, 김용의 같은 어린 야수들이 튀어 나왔고, 신정락과 우규민은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삼성에서 트레이드해온 포수 현재윤과 내야수 손주인은 핵심 전력이다. 우여곡절 끝에 입단한 투수 류제국은 승리의 보증수표가 됐다.
“올해는 가을잔치를 기대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김 감독은 “이제 그런 건 말 안 해도 다 알지 않나. 말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 드리겠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김 감독은 “꿈은 크게 가질 필요가 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 아마 선수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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