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의 일이다. 1995년 한국시리즈 7차전을 보기 위해 잠실에 갔다. 당시는 인터넷 예매가 없던 시절이라,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야구장 앞에는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운 사람들도 있었다. 몇 시간 동안 긴 줄을 함께 서 있다보니, 서로 모르는 팬들끼리도 동지애가 생겼다. 18년이 지나도 기억나는 ‘열혈남아’ 앞줄 아저씨. “나는 남해에서 올라왔다”며 최동원에 대한 얘기를 한 시간 넘게 하더니,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도 했다. 친구들끼리 만나면, 여전히 그 날의 일을 떠올린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경기만큼이나 기다림 속의 설렘도 큰 추억이 되는 것 같다.
#지인과 함께 지하철 사당역에서 환승을 하려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아주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2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설명하고 돌아서니, 무엇인가가 이상했다. 지인에게 물었다. “표지판에 뻔히 다 나와 있는데, 어떻게 환승하는 길을 모를 수 있지?” 그랬더니 지인의 답…. “문맹일 수도 있어. 우리나라가 문맹률이 낮다고 하지만, 아직도 50∼60대 문맹 여성들이 꽤 있다고. 지하철 안에서야 방송이라도 나오지만, 환승할 때는 얼마나 힘드시겠어?” 순간, 좁은 이해의 폭이 부끄러워졌다.
#언젠가부터 사라진 가을풍경이 있다. 굽이굽이 늘어선 표 구매 줄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09년까지 포스트시즌(PS) 표의 약 10%를 현장에서 판매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는 전량 인터넷 예매를 하고 있다. “흥행이 잘 안 되던 시절에는 현장에 소량의 표가 있어도 표를 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팬들이 오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인터넷 구매는 판매자나 구매자 모두에게 편리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광적인 클릭’을 아무리해도, 표를 구할 수 없다고 푸념하는 팬들도 많다. 이들에게도 패자부활전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차피 시간이라는 비용은 본인의 부담이 아닌가.
#인터넷에 익숙한 팬이라면 한번의 기회는 가질 수 있으니, 차라리 나은 경우다. 프로야구 원년, 자식의 손을 이끌고 야구장으로 향했던 분들은 이미 환갑이 넘었다. 이들 가운데는 인터넷에 문외한인 분들도 더러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 컴맹은 많은 부분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맹도 공공교통인 지하철을 불편함 없이 이용해야 하듯이, 컴맹도 ‘국민스포츠’라는 프로야구를 현장에서 즐길 권리가 있다. “TV 중계로 보면 되지”하고 훌훌 털어버리는 팬도 있지만, “밤을 새서라도 표를 구하고 싶다”는 팬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들에게도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할 기회는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2013년 PS 표의 판매방식은 페넌트레이스 종료 직후, PS 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 이 자리에는 KBO와 PS 진출팀 관계자들이 모인다. 안건을 제출하는 KBO는 최근 “2010년 이전처럼 현장판매분을 두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현장판매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할지 등 고민할 문제가 남아있지만, 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KBO는 이번 올스타전(19일)에서도 인터넷 예매에 익숙지 않은 일부 팬들을 위해 포항구장 1만2000석 중 5000장에 대해 현장판매(2일)를 실시했다. 결과는…. 불과 1시간 반 만에 현장판매분은 동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