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농구인보다는 여자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죠. 근데 농구가 운명 같기도 하고…. 전생에 뭐가 있었나 보죠.”
국내 여자 프로농구에서 뛰다 2011∼2012시즌이 끝난 뒤 은퇴한 ‘바스켓 퀸’ 정선민(39)은 지난해 4월 은퇴 기자회견 때 “농구 때문에 포기하고 산 게 많았다”며 새 삶을 찾아 나설 듯이 얘기했다. 그런데 그는 중국 리그로 가 선수로 한 시즌을 더 뛰었다. 은퇴를 번복하고 선수생활을 더 할 생각이었으면 국내에서 계속 뛰었어도 될 텐데 왜 중국으로 갔을까.
그는 “얘기하자면 길다”고 했다. 얘기는 이랬다. 2011∼2012시즌에 그의 소속 팀 국민은행은 준우승을 했다. “준우승했으니 다음 시즌에 구단이 바라는 건 뻔하잖아요, 우승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어요. 더 이상 팀이 올라갈 곳이 안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은퇴했죠. 나이도 있고.”
애당초 중국에 갈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니 득달같이 에이전트들이 달려들어 집요하게 연락을 해댔다.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영입 제안을 해 온 구단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조건을 내건 ‘산시(山西)’를 택했다. “산시는 ‘그냥 와서 뛰기만 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팀이든 용병 선수에게는 기대하는 게 많다. 하지만 산시는 그런 부담을 주지 않았다. 부담 없이 뛴 그는 산시가 2부 리그에서 1부 리그로 진출한 첫해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산시의 사령탑이던 스페인 출신 감독이 “한국의 농구 수준을 다시 보게 됐다”고 말한 것만으로도 중국에서 뛴 보람을 충분히 느낀다.
중국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그는 2월 국내로 돌아왔다. 하지만 농구인으로서의 삶은 곧바로 이어졌다. 그는 지난달 여자대표팀 코치로 선임됐다. 10월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위성우 감독(우리은행)으로부터 코치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는 망설였다. “고마운 일이긴 하죠. 하지만 혹시 잡음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프로팀에 소속된 코치도 많은데 지도자 경험이 전혀 없는 제가 코치가 되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위 감독은 “지도자 경험은 내가 있다. 나보다 선배인 정상일 코치(삼성생명)도 경험이 많다. 선민이는 선수로서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해주면 된다. 중국에서 뛰어봤으니 중국 선수들도 잘 알 것이다”고 했다. 정선민은 현역 시절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와 득점상을 일곱 번씩 차지한, 설명이 따로 필요 없는 한국 여자농구의 간판이다. 그는 국내 선수로는 유일하게 2003년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무대도 밟았다.
“그럼 기자회견 때 말한 여자로서의 삶은…. 결혼은 안 해요?” “네? 무슨 그런 심한 말을…. 결혼을 안 하다뇨”라며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웃었다. “어차피 늦었는데 이제 와서 서둘 필요가 있겠어요. 남자 친구가 있으니 때를 봐서 해야죠.”
어차피 한 번 번복한 은퇴인데 선수로 더 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긴 팔을 휘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민폐’라는 말을 꺼냈다. “우리 나이로 올해 40이에요. 포지션이 가드라면 또 모를까 센터나 포워드는 체력 소모가 심해서 힘들어요. 체력도 안 되는 노땅이 팔팔한 후배들과 같이 훈련하는 것 자체가 민폐예요. 대표팀 코치로 최선을 다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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