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이닝 5실점. 선발투수로서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남들은 ‘쑥스러운 승리’라고 부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삼성 배영수(32)에게는 이만큼 귀한 승리가 없다. 지독한 아홉수를 끊었고, 대기록에 한 걸음 다가섰다. 무엇보다 하루 전 세상의 빛을 본 자신의 핏줄에게 승리를 선물했다. 마음껏 기뻐해도 좋은 날이다.
배영수는 26일 대구 넥센전에서 시즌 8승(3패)째를 올렸다. 2회까지 6점을 뽑아준 타선의 지원을 듬뿍 받았다. 승리투수 요건에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긴 5회 2사 후, 5점을 내준 배영수가 다시 2사 1·3루 위기에 놓이자 김태한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갔다. 고개 숙인 제자에게 “정신 차려라. 여기서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집중력이 흐트러졌었다”는 배영수도 그 순간 정신을 번쩍 차렸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삼성은 13-7로 승리했고, 배영수는 천신만고 끝에 승리를 지켰다.
배영수가 이날의 승리를 유독 간절하게 원했던 이유가 있다. 그는 5월 25일 대전 한화전(6.2이닝 1실점)에서 시즌 7승째를 거두면서 다승 단독 1위를 달렸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다음 승리까지 두 달이 걸릴 줄은 몰랐다. 이후 7경기에 나갔지만 승리와 연을 맺지 못했다. 배영수는 “솔직히 2개월 동안 정말 힘들었다. 잘 던진 게임도 있고, 못 던진 게임도 있었으니 그저 빨리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야구가 정말 어렵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고 털어놨다. 현역 최다승 투수가 힘겹게 일궈낸 통산 110번째 승리. 그간 ‘109승’의 아홉수에 걸려 그렇게 1승이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삼성 류중일 감독마저 “배영수가 1승을 추가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통산 110승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게다가 배영수는 하루 전인 25일 둘째 딸을 얻었다. 지난해 태어난 첫 딸 은채 양에 이어 또 한 명의 보석을 품에 안았다. 등판 일정 때문에 아내가 출산한 서울에 올라가 보지는 못했지만, 대구에서 승리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배영수는 “안 그래도 둘째가 태어나서 꼭 이기고 싶었다. 좀 더 좋은 게임을 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힘들게 이기게 돼 딸에게 오히려 미안하고 부끄럽다”며 쑥스러워했다.
이제 배영수는 역대 삼성 투수 최다승 기록(김시진 롯데 감독·111승)에 1승차로 다가섰다. 김 감독은 통산 124승을 올렸지만, 삼성에서 111승을 한 뒤 롯데로 이적해 13승을 추가했다. 앞으로 배영수가 1승만 더 따내면 김 감독의 삼성 시절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고, 2승을 더하면 팀 내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배영수는 “삼성이라는 한 팀에서 꾸준히 해왔다는 데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김 감독님 같은 대투수의 기록을 깰 수 있다면 더 영광일 것 같다”면서도 “내가 아니라 ‘우리’가 싸우는 것 아닌가. 팀을 위해서라도 1승, 1승이 간절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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