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월드 리베로’ 여오현(35)에게 “배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우승 뒤 가족들하고 보내는 휴가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대캐피탈은 7월 28일 끝난 ‘2013 안산 우리카드컵’에서 2010년 컵 대회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맛봤다. 자유계약선수(FA)로 삼성화재에서 이적한 여오현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삼성화재나 현대캐피탈이나 훈련 방식, 하루 일과는 비슷해요. 다만 우리 팀 선수들이 큰 경기에서 삼성화재에 자꾸 지니까 정신적으로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자신감도 찾았고 (문)성민이도 돌아올 테니까 V리그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제 ‘우리 팀’은 현대캐피탈이 됐지만 우승 이틀 뒤 집 근처인 경기 용인시 ‘죽전 카페거리’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세련된 느낌을 풍기는 ‘삼성맨’ 같았다.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에게 한 켤레를 기증한다는 신발을 신고, 악마가 입는다는 브랜드에서 나온 손가방을 든 채 고급 승용차에서 내리는 그는 운동선수보다 ‘광고 기획자’ 같은 분위기였다. “원래 센스 있다는 말을 좀 듣는다”는 게 그의 설명. 하지만 사인을 부탁하는 팬에게 제일 먼저 쓴 두 글자는 ‘H.D.’였다, 현대의 머리글자다.
“(삼성화재)팀 내 불화요? 전혀 아닙니다. 변화가 필요했어요. 저를 더 열심히 뛰게 할 아주 아픈 채찍이. 마침 현대캐피탈에서 기꺼이 받아주시겠다고 하셔서 다행이었죠. 과할 정도로 반갑게 맞아주신 구단 관계자와 팬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오현은 대학교 2학년 때 리베로 제도가 생긴 것도, 자신이 3라운드에서 뽑힌 2000년 드래프트 때 삼성화재가 1, 2라운드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도 모두 행운이라고 했다. 그 덕에 배구 명가 삼성화재에서 13년이나 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간다. 그는 사실 작은 키(175cm) 때문에 어릴 때부터 배구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진학할 때마다 역도, 레슬링처럼 키가 작아도 괜찮은 종목으로 바꿔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왜 내가 못하는 것 때문에 고민하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되지 않겠냐’라고 생각을 바꾸니까 길이 보이더라고요. 리베로를 꿈꾸는 후배들한테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그 뒤로 그는 공을 받고 또 받았다. “시킨 건 원래 잘 하는 성격” 덕에 길고 지루한 반복 훈련을 참고 또 참았다는 그는 훈련으로 생긴 굳은살 때문에 오른팔에는 주삿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스파이크 받을 땐 아파요. 수비 연습은 혼자 할 수가 없어요. 누군가 서브나 스파이크 연습을 할 때 받아줘야 하기 때문에 팀워크가 중요합니다. 개인 훈련 때는 하체 강화에 신경을 많이 써요. 공은 다리로 받는 거니까요. 서브 리시브는 자신 있는데 아직도 (이)호(전 국가대표 리베로)형 전성기에 비하면 디그(받아내기)가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LIG손해보험 부용찬이 후계자”라는 그는 어느덧 후계자를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베테랑 선수가 됐다. 프로 무대에서만 372경기에 나선 그에게 “인생 최고의 경기는 어느 경기였냐”고 물었다. “바로 다음 경기가 인생 최고 경기가 될 겁니다.” 여오현다운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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