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여자오픈 공동 42위 그쳐 1R 갤러리 카메라 셔터 방해 아쉬움 대회 전 빡빡한 일정 탓 휴식도 부족 바람도 시샘…경기 순서 되면 심술
‘골프여왕’ 박인비(25·KB금융그룹)의 위대한 도전이 아쉽게 막을 내렸다.
5일(이하 한국시간)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막을 내린 브리티시여자오픈. 시즌 네 번째 메이저 대회로 열린 이 대회 최대 관심사는 박인비의 그랜드 슬램 도전이었다. 한 시즌 열리는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 슬램’(Grand Slam)은 골프 역사상 누구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다.
박인비는 마지막 날 6오버파 78타를 치며 최종합계 6오버파 294타 공동 42위에 머물렀다.
● 아쉬웠던 순간
1라운드 경기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그랜드 슬램 도전은 순조롭게 시작됐다. 1라운드 9번홀까지 5개의 버디를 잡아낸 박인비는 10번홀 버디를 기록하며 6타를 줄여 단독 선두로 나섰다. 그대로 경기가 진행되면 골프 역사상 첫 그랜드 슬램 달성을 기대할 수 있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불상사가 일어났다. 15번홀(파4)에서 박인비가 티샷을 준비하던 중 경기를 지켜보던 갤러리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놀란 박인비는 스윙을 하려다 멈추고 자세를 풀었다.
불길한 징조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박인비의 티샷은 오른쪽으로 밀려 러프로 들어갔다. 간신히 파 세이브에 성공했지만 한번 리듬을 빼앗긴 드라이브 샷은 다음 홀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16번홀(파4)에서 티샷이 다시 오른쪽으로 밀려 공이 러프로 들어갔다. 두 번째 샷은 깊은 벙커에 빠졌고, 세 번째 샷으로 겨우 공을 그린에 올렸다. 그러나 홀까지 너무 멀어 3퍼트를 하고 말았다. 빨랫줄처럼 쭉쭉 뻗어가던 드라이브 샷이 고장 나는 바람에 경기를 어렵게 풀어갔다.
박인비는 경기 뒤 “1라운드 후반홀로 돌아간다면 몇 개의 드라이브 샷 실수를 바로잡고 싶다. 실수가 자꾸 떠올라서 한동안 그린 위에서 힘든 경기를 했다”고 말했다.
● 짧았던 준비 기간
한 가지 더 아쉬운 점도 있다. 대기록을 앞에 두고 완벽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
박인비는 22일 마라톤 클래식을 끝내고 다음날 귀국했다. 그랜드 슬램 도전에 앞서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닷새 동안 국내에 머물면서 페라리 후원행사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제대로 쉴 틈이 없었다.
박인비는 28일 스코틀랜드 현지로 떠났다. 평소 대회 출전과 비슷한 일정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현지 날씨가 좋지 않은 탓에 제대로 적응 훈련을 하지 못한 채 경기를 시작했다.
완벽하지 못한 준비는 경기를 치르는 동안 조금씩 엇박자가 났다. 무엇보다 컴퓨터 퍼팅이 사라졌다. 박인비는 이번 대회 4일 동안 무려 143개의 퍼팅을 적어냈다. 총 타수 294타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다. 1라운드에서 30개를 기록했을 뿐, 2라운드 37개, 3라운드 36개, 그리고 4라운드에선 40개까지 치솟았다. 7월 US여자오픈 우승 당시 퍼팅 수는 113개였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대회가 열린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는 바다와 인접해 있다. 오전에 날씨가 좋다가도 오후에 강풍이 불 때가 많다.
1라운드에서 오전에 경기를 치른 박인비는 2라운드에서 오후에 경기를 시작했다. 1라운드 때는 하루 종일 날씨가 좋았지만 2라운드 오후에는 바람이 거세졌다. 또 3라운드에서는 오전에 경기를 하다 강풍 때문에 중단되기도 했다.
박인비는 경기가 끝난 뒤 “마음 편하게 경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대회 기간 동안 그린 스피드에 빨리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