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이번 야유회는 동해바다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은 8월달 첫째 토요일날 아침 9시까지 청량리 역전앞에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뜻의 말이 겹쳐서 된 말을 ‘겹말’이라고 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선 겹말들이 무척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예전부터 ‘역전앞’은 대표적 겹말로 지적돼왔다. ‘역전(驛前)’이라는 단어가 ‘역의 앞’이라는 뜻이니, ‘역전앞’은 ‘역앞앞’이 된다. 예문에서 보듯 ‘역전(앞)’뿐만 아니라 ‘과반수 (이상)’, ‘동해(바다)’, ‘(새로 들어온) 신입생’, ‘8월(달)’, ‘토요일(날)’ 등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용하는 겹말들이다. 여기서 괄호 안의 말은 사실상 쓸데없이 덧붙는 사족이다. 이밖에도 ‘남은 여생’, ‘남긴 유산’, ‘따뜻한 온정’, ‘쓰이는 용도’, ‘잃은 손실’ 등도 대표적 중언부언으로 꼽힌다.
가만히 보면 야구에서도 무심코 쓰는 겹말들이 꽤 많다. 중계방송을 하는 캐스터나 해설가들의 말에서, 또는 기사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삼성 이승엽 선수의 타구가 우측 폴대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났습니다. SK 1루수 박정권 선수가 타구를 잡아 1루 베이스를 찍고 홈으로 던집니다.”
‘폴대’는 야구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겹말이다. ‘폴(pole)’은 막대기, 기둥, 장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영어다. ‘폴’에다 ‘대’를 붙이는 것은 그야말로 ‘역전앞’과 다름없다.
“1루 베이스를 밟았다”거나, “2루 베이스를 찍었다”거나, “3루 베이스를 스쳤다”도 마찬가지다. ‘베이스(base)’가 ‘루(壘)’를 의미한다. 1루는 ‘퍼스트 베이스(first base)’인데 “1루 베이스를 밟았다”고 한다면 “1루루를 밟았다”거나, “퍼스트 베이스 베이스를 밟았다”처럼 같은 뜻의 말을 겹쳐 쓴 셈이다. 그냥 “1루를 밟았다”, “2루를 찍었다”, “3루를 스쳤다”고 하면 된다.
‘그물망’ 역시 오용하기 쉬운 겹말이다. ‘망(網)’ 자체가 ‘그물’이다. “LG 내야진이 그물망 수비를 펼칩니다”라거나 “넥센 박병호 선수가 헛스윙을 하며 놓친 방망이가 3루 덕아웃 위 그물망에 맞고 떨어졌습니다”라는 말은 옳지 않다. 전자는 ‘그물 수비’, 후자는 ‘안전그물’로 표현하는 것이 적확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물망’은 모두 ‘그물’로만 표현해도 무방하다.
캐스터가 흥분한 목소리로 겹말을 사용하는 사례는 또 있다. “롯데 전준우 선수의 타구가 좌측 라인선상을 타고 흐릅니다.” ‘라인(line)’이 ‘선’을 뜻한다는 것을 모를 리 있을까.
물론 혹자는 “겹말을 쓰지 않으면 맛이 다르다”고 할지 모른다. “폴대”, “그물망 수비”, “1루 베이스”, “라인선상”이라고 해야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듣고, 쓰고, 사용하던 말이어서 그런 느낌이 나는 것은 아닐까. 야구팬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야구에서 ‘역전앞’과 같은 겹말을 몰아내기 위해 방송과 언론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