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선수를 다시 대표팀에 부른다면 그 선수는 개인적인 사정에 상관없이 언제든 복귀해야 하는 것일까. 대표팀 복귀 여부를 둘러싸고 대한배구협회와 여오현이 갈등을 빚고 있다.
대한배구협회는 다음 달 4∼8일 일본 고마키에서 열리는 세계남자선수권 아시아예선 최종 라운드에 참가할 대표선수 14명을 최근 선발하면서 여오현의 이름을 명단에 올렸다. 이에 대해 여오현의 소속팀 현대캐피탈은 “여오현은 지난해 9월 런던 올림픽 예선전 이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본인의 동의 없이 대표팀에 차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협회에 맞섰다.
여오현은 4일 충북 진천선수촌에 들어가 다시 한 번 박기원 대표팀 감독에게 대표팀에서 뛸 수 없다는 의사를 전달한 뒤 선수촌을 나왔다. 이에 대해 협회는 5일 이사회를 열고 현대캐피탈과 여오현에게 대표팀 소집에 협조해줄 것을 다시 한 번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이종경 협회 전무이사는 “향후에도 여오현이 소집에 불응할 경우 규정에 따라 1년간 국제대회 또는 국내대회 참가 금지 등의 징계를 취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12년간 태극마크를 달았던 여오현의 대표팀 차출 거부를 둘러싸고 배구계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여오현은 지난해 올림픽 예선전에 나서면서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대표팀에 참가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며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배구계의 한 관계자는 “은퇴를 선언한 여오현의 동의 없이 협회가 그를 대표팀에 차출한 것은 문제가 있다. 국가를 빛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수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여오현은 올해 6월 열린 월드리그에서는 세대교체를 이유로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현대캐피탈도 여오현의 차출이 반갑지는 않다. 현대캐피탈의 주포 문성민은 6월 월드리그에서 국가대표로 뛰다 무릎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을 당해 프로배구 2013∼2014시즌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팀 전력이 약해진 것은 물론이고 협회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은 3일 국가대표 선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던 대한배구협회 남자 국가대표 관리이사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기량이 국내 최정상급인 여오현이 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해 소집에 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여오현은 지난달 끝난 컵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팀을 우승까지 이끌어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한국 남자배구에서 여오현을 대체할 만한 선수가 없다고 판단한 박 감독은 여오현을 추천했고 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도 승인했다. 남자 배구팀의 한 감독은 “내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메달과 2016년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한국 배구는 여오현이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축구 야구 등 다른 종목의 경우 선수 본인이 대표팀 은퇴 의사를 밝히면 대표팀에 차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1년 대표팀 은퇴 뒤 여러 차례 팬들의 대표팀 복귀 요청을 받았던 박지성에 대해 대한축구협회는 “선수 개인의 의사가 먼저”라며 선을 그은 바 있다. 지난해 현역에서 은퇴한 박찬호도 2009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뒤 더이상 대표팀에 차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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